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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재 칼럼] '어항'이 되고 있는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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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재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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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가 그리는 인물 김정호에 대해 우리가 특히 많이 들어온 얘기는 그가 함부로 상세한 지도를 그려 외적을 이롭게 하려 했다는 오인을 사 감옥에서 원통하게 죽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선 일제의 조선 집권세력에 대한 폄하 의도에서 나온 날조라는 설이 제기되고 있는데, 그 진위를 캐긴 쉽잖으나 다만 이 영화의 원작소설 작가 박범신이 그에 대해 “나라가 독점한 지도를 백성에게 돌려주고자 한 뜻이 드높았다”고 말했듯 일말의 진실은 담겨 있는 듯하다. 즉 조선시대 지도는 철저히 정부의 손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은 당시 나라의 도로 사정이 매우 열악했다는 것과도 겹친다. 그렇게 된 데에는 산과 강이 많은 탓도 있지만 역대 왕조들이 도로를 건설하는 걸 기피했기 때문인데, 이는 도로는 곧 외적의 침략을 부른다는 우려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도로도 그렇지만 강과 내가 많은 땅임에도 교량을 놓는 것을 매우 꺼렸다. 길과 다리로 연결되지 않은 국토, 지역과 지역 간의 단절, 백성에겐 차단된 국토의 형상. 우리는 우리의 국토 공간을 스스로 협소하게 했던 것이다.

조선말 쇄국은 대외적으로 장벽을 친 것이었지만 그와 함께, 아니 그 이전에 우리 내부의 쇄국과 단절이 있었다. 그래서 근대화와 발전이 개방을 통한 것이라고 할 때 그 개방은 이중의 개방과 확장이었다. 외국에 문을 열어 대외적으로 확장한 것이자 우리 내부적으로도 공간을 확장한 것이었다. 또한 그 확장은 공간적인 것이면서 시간의 확장이기도 했다. 다른 공간과의 만남을 통해 그 공간의 시간을 만나 우리의 시간을 확장하는 것이었다.
이 공간과 시간의 확장은 멈출 수 없는 것이다. 특히 지금 한국사회를 거의 전면적으로 바꾸고 있는 김영란법이 해내고 있는 일의 의의도 시간과 공간의 확장에 있다 할 수 있다. 적잖은 허점과 미비에도 오랜 관성과 견고한 기성구조가 제약했던 관계망이 넓어지고, 저녁 시간이 술집에서 벗어나 더욱 충실하게 됨으로써 우리는 시공의 확장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와 한편으로 지금 우리 사회는 퇴행과 후진, 자폐를 심각한 양상으로 보여주고 있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들은 시공의 역행과 축소에 다름 아니다.

대기업들이 일사불란하게 돈을 내 만들어진 어느 재단을 둘러싼 스캔들은 공권력의 편법적 활용이라는 과거의 부활을 보여준다. 이 ‘용(미르)’은 우리를 더 넓은 미래의 시공으로 비상케 하는 것이 아니라 협소한 과거로 추락시키고 있다. 어느 농민의 죽음을 둘러싼 논란은 우리 사회가 쌓아 올린 지식인과 전문가에 대한 신뢰와 권위가 허물어지는 퇴행을 보여주고 있거니와 그 이전에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발단이 된 차벽이라는 기이한 구조물은 공공의 치안력이 극히 협소한 용도에 갇혀버린 것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우리 사회의 자원과 에너지가 우리를 미래가 아닌 과거로, 넓은 대양이 아닌 좁은 우물 안으로 되돌리는 데 쓰이고 있다. 한국 사회를 ‘어항’으로 만들고 있다. 시간에서 되돌리며 공간에서 가두는 시공의 어항으로 만들고 있다. 어항 속에 갇힌 물고기들은 본래의 성질에선 보이지 않는 난폭함을 드러내며 서로에게 험악해진다고 한다. 서로가 서로를 물어뜯고 할퀴려 한다.

우리가 우리 내부에 갇혀 거칠게 다투는 어항이 되는 동안 바깥의 세계는 더 넓어지고 빨라지고 있다. 예컨대 러시아가 시베리아횡단철도를 일본 홋카이도까지 연결하자고 일본에 제안했다는 소식에서 우리와 바깥 간의 그 대조가 보인다. 이 정부 출범 초기 부산에서 유럽까지 철도로 연결하겠다는 구상과 함께 주창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어항 속에 갇혀 있다. 대통령은 어제 “북한이 고립될 것”이라고 다시 경고했지만 그 경고가 향해야 할 곳은 북한만이 아닐 듯싶다.

이명재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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