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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시선]김영란법이 주는 선물: 저녁이 있는 삶

최종수정 2016.08.25 10:56 기사입력 2016.08.25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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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학 서울대 행정연구소 특별연구원

김환학 서울대 행정연구소 특별연구원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 같던 폭염도 꺾이고 있다. 이제 가을은 올 것이다. 소용돌이와 역류의 흔적을 뒤로하고 물은 아래로 아래로, 시간은 앞으로 앞으로 흐른다. 김정은이 미사일을 쏴대고 우병우가 버티더라도 세상은 점점 좋아질 것이다. 그 증거가 김영란법이다.

오고 가는 정을 막아 세상이 삭막해질 것이라는 둥, 경제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둥 해도 날짜는 계속 가고 마침내 9월28일부터 김영란법은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운용상의 문제가 거론된다. 예컨대 기업사보를 외주로 제작하는 경우도 언론에 포함되어 김영란법이 적용될 것인지, 식사접대에서 골프접대로 바뀌는 것은 어떻게 막을 것인가, 무수한 범법사실을 어떻게 다 처리할 것인가 등등. 하지만 대부분 시행령을 세련되게 다듬어 적용할 문제일 뿐이다. 그 범위를 넘어 자신의 사회적 운명을 걸고 도발할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의문이다. 세상이, 인간관계의 틀이 바뀔 것이다. 대기업에도 김영란법이 적용되어 하청업체를 괴롭히지 못하게 한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김영란법을 우려하는 이는 정이 오고 가는 품위 있는 식사에 애착이 가는 모양이다. 품위 있는 식사, 남의 돈으로 하다 보면 일 년에 몇 번이 아니라 일주일에도 몇 번씩 하게 되고, 생활패턴이 그렇게 굳어진다. 그렇게 만나는 관계는 식사에 한정되지 않는다. 중요한 의사결정의 틀이 되고, 일상으로 얽혀든다. 그렇게 어울리다 보면 품위만 즐기는 것이 아니라 실속 있는 일들을 도모하려 한다. 그들과 개돼지를 양분하는 허위의식을 제거하고 보면, 품위와는 거리가 멀다. 정을 말하지만 바닥에는 목적달성을 위한 인맥관리가 도사리고 있다. 여러 인연의 사적 관계를 기화로 업무와 공적 영역을 넘보는 것이다. 김영란법이 겨누는 것은 몇 푼의 식사비나 선물이 아니라 바로 이 음지의 기생적 생활양식이다. 여당의 청와대 오찬으로 유명해진 송로버섯, 대팻밥만큼 얇게 밀어서 스파게티에 넣으면 2만원 안쪽이다. 샥스핀이 잔인하다 해도 육식동물이라면 어차피 도살은 피할 수 없는 숙명 아닌가. 시방 중한 것은 근본 틀이요, 사고방식이다.

이제 공돈으로, 남의 돈으로 지탱되던 저녁모임은 줄어들고 짧아질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관태기'라는 말이 유행이다. 관계와 권태기의 합성어이다. 집단에 소속되어 강요를 받기보다 여기서 벗어나고 싶은 것이다. 혼밥(혼자 밥 먹기)에 혼놀(혼자 놀기), 혼술(혼자 술 마시기)이 낯설지 않다. 그렇다고 삭막해지지는 않는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서 심심하면 견디지 못한다. 때로는 혼자, 때로는 같이할 뿐이다.

김영란법 덕분에 손학규가 말한 저녁이 있는 삶,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삶이 있는 저녁이-어느 누구에게 저녁이 오지 않는다는 말인가, 그 저녁에 삶이 없을 뿐이다!- 손에 잡힐 듯이 가까워졌다. 공과 사는 좀 더 분명히 구분될 것이고, 낮에 업무로 얽힌 사람을 저녁에 사적으로 만나는 일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미국이 그렇고 유럽이 그렇다.
하지만 우리 삶의 저녁은 때가 된다고 오지 않고, 여유시간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저녁에 생기를 불어넣을 공간과 돈, 그리고 시간을 디자인할 기술까지 필요하다. 돈이 좀 모자란 것은 기술로 보완할 수 있다. 요리가 그렇다. 몇 번 하다보면 시간도 얼마 걸리지 않고, 나름 즐거움도 있다. 친환경 먹을거리를 어떻게 구입할 것인가부터 알아보아야 한다. 손쉽게 만들 수 있는 요리, 요즘 '먹방' 프로그램에 차고 넘친다. TV만 들여다 볼 것이 아니라 직접 움직일 일이다. 취미를 같이 즐기는 동아리 활동에도 눈을 돌려볼 만하다. 사업파트너나 갑을관계에서도 건전하게 서로 신뢰를 쌓고 의견을 교환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김환학 서울대 행정연구소 특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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