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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事와 史] 한국의 21세기 '앙시앵 레짐'

최종수정 2016.07.22 16:08 기사입력 2016.07.21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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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事와 史] 한국의 21세기 '앙시앵 레짐'

1792년 4월20일 프랑스는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에 선전포고를 했다. 1789년 7월14일 바스티유 함락으로 프랑스혁명이 발발한지 4년째 접어드는 해였다. 이 전쟁은 하나둘씩 다른 나라를 끌어들이면서 마침내 전 유럽이 참가하는 전쟁으로 치닫는다. 프랑스는 유럽의 거의 모든 나라를 적으로 돌리게 되었다. 프랑스 혁명전쟁의 시작이다.

전쟁 초기 프랑스군은 연전연패였다. 1792년 오스트리아·프로이센 연합군은 프랑스 국경을 넘어 8월26일 국경도시 론을, 9월3일에는 베르‰窩함락했다. 총사령관인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혁명 소굴인 파리를 철저히 짓밟겠노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이 위협은 오히려 파리 시민의 혁명적 열정을 고조시켰다.

전선으로 출발하는 자원병들은 자기들이 파리를 비운 사이에 처자식이 죽음을 당하지 않으려면, 외국에서 쳐들어온 적보다 국내의 적을 먼저 소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792년 9월2일 유명한 9월 학살’이 발생한다. 민중은 감옥에 갇힌 정치범들이 반혁명 음모에 가담하기 위해 봉기를 일으킬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믿고 공격 및 살해를 감행했다. 일주일도 채 안 되는 기간에 ‘혁명의 적’이라는 혐의를 받은 1천명 이상의 사람들이 즉결재판도 받지 못하고 처형당했다.
[事와 史] 한국의 21세기 '앙시앵 레짐'


이런 흥분 상태는 9월20일 발미에서 프랑스군이 최초로 승리를 거두고 적군을 격퇴하면서 차차 가라앉았다. 선전포고 이후 발미 전투의 승리까지 무려 5개월 동안 프랑스는 연전연패를 거듭했다. 프랑스군은 조직도 허약한데다 장비도 형편없었다. 고심한 혁명정부는 신분과 학력, 연령 등을 불문하고 군인으로서의 자질과 능력이 우수하다면 무조건 장군으로 등용하겠다는 방침을 세우고, 과감하게 ‘국민군’으로 개편하기 시작했다.
혁명 전에는 귀족이 아니면 장군이 될 수 없었지만 앞으로는 채소가게 아들이건 농부의 자식이건 출신에 상관없이 능력만 있다면 누구라도 지휘관이 될 수 있었다. 코르시카의 몰락 귀족 출신인 나폴레옹도 이런 분위기 때문에 장군으로 등용될 수 있었다. 혁명 전이라면 제아무리 나폴레옹이라 해도 귀족 자제들에게 출세 길이 가로막혀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을 것이다.

국민군으로 개편하여 얻은 첫 번째 성과가 발미 전투의 승리였다. 원래부터 프랑스군 내에서 일반 병사들의 사기는 적군의 귀족 지휘관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높았다. 혁명의 열기로 불타오르던 병사들은 자신들이 정의의 편이라는 확신에 차 있었다. 실력 있는 유능한 장군이 이런 사기충천한 병사들을 지휘하게 될 경우, 장비의 불리함 정도는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었다.
발미 전투는 프랑스가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에 선전포고한 후 승리를 거둔 최초의 전투이자, 농민군이 귀족 군대를 격파한 최초의 전투였다. 프로이센군 진영에서 전투를 끝까지 지켜본 괴테는 “오늘 이곳에서 세계 역사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전세는 역전되었고, 그 후 전황은 프랑스에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프랑스군은 10월8일 베르‰窩탈환했고, 10월22일에는 론을 수복했다. 출생이나 신분이 아니라 실력 있는 군사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프랑스군은 유럽의 구태의연한 귀족 군대보다 월등한 전투력을 과시했다. 프랑스혁명을 통해 탄생한 국민군은 훗날 나폴레옹의 지휘 아래 유럽을 제패하게 된다. 프랑스가 발미에서 승리를 거둔 바로 그날, 세계 역사상 처음으로 보통선거로 선출된 국회, 국민공회가 첫 회합을 가졌다. 그리고 다음날 왕정의 폐지가 정식으로 선언되었다.
교육부 나상욱 전 정책기획관의 망언이 온 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그는 “신분제를 공고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다 평등할 수는 없기 때문에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99%의 민중은 개·돼지로 취급하면 된다. 먹고 살게만 해주면 된다”고도 했다. 귀를 의심하게 만드는 말이다. 몇 세기 전으로 시간여행을 한 느낌이다. 4·19, 6월항쟁 등 우리가 치렀던 모든 고귀한 희생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발언이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그 망언이 주류 엘리트들의 속마음을 대변한 것이라는 의심을 거둘 수 없다는 점이다. 혁명 전의 프랑스는 2%가 나머지 98%를 지배했다. 엘리트들이 시대착오에 빠져있는 한 우리의 앞날은 암담하다. 21세기에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는 구호를 외쳐본다. “앙시앵 레짐을 타파하자! 우리도 새로운 시대를 열자!”

박상익 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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