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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시선]서울메트로의 평범함에 대하여

최종수정 2016.06.17 11:01 기사입력 2016.06.17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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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학 서울대 행정연구소 특별연구원

김환학 서울대 행정연구소 특별연구원

2002년 독일과 스위스, 오스트리아에 걸쳐있는 호수 보덴제에 접한 작은 독일 도시 상공에서 러시아의 여객기와 DHL 수송기가 충돌하여 71명이 사망했다. 이 사건에 대해 법원은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했다. 항공안전에 관한 관제업무는 국가가 직접 맡아야지 민간에 넘기는 행위는 위헌이고, 그 위탁계약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리고 해당 지역의 관제업무를 Skyguide라는 스위스의 주식회사가 맡았는데, 항공사보다는 이 관제회사에 주로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했다.

당시 관제실에서는 닐슨이라는 관제사 혼자서 2m 간격의 모니터 두 대를 지키고 있다가 접근 중인 두 항공기가 충돌할 때까지 아무런 경고도 보내지 못한 것이다. 국민의 안전은 경영효율화에 양보할 수 없는 영역인데, 이를 민간에 맡기었고, 그 민간회사가 이윤극대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인원부족으로 인한 재난을 초래한 전형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이 회사는 인건비 문제로 충분한 인원을 확보하지 않았고, 2인 1조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은 것이다. 여기까지의 경과는 우리에게 여러모로 기시감이 있다.

그런데 비극적인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 항공기 충돌사고로 처와 두 아이를 잃은 칼로예프라는 러시아의 건축가가 2004년 스위스의 그 관제사 닐슨을 살해한 것이다. 2008년 스위스에서 5년 남짓의 자유형이 확정됐는데, 그동안 형사절차가 진행되면서 이미 형기의 3분의 2를 넘겼기 때문에 곧바로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그는 러시아연방의 작은 공화국인 고향으로 돌아가 푸틴 지지자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건설부 차관으로 취임했다.

복잡한 사건이 닥치면 사람들은 보통 제도 탓을 한다. 행위자에 대한 책임을 묻게 되면 누군가를 지목해야 하는 부담감 때문이다. 가해자가 가시적이지 않아 목표를 잘못 정할 위험도 있다. 그러나 제도는 바람 앞의 그물 같은 것이다. 일회용 주사기를 계속 쓰다 다수에게 C형 간염을 감염시킨 다나의원 사태에 대해 의사협회 관계자들은 건강보험 수가가 낮아서 그렇다고 한다. 하지만 보험수가를 인상한다 해도 일회용 주사기를 반복해서 쓰던 자는 계속 그럴 것이다. 나쁜 자는 나쁜 것이다. 칼로예프의 러시아식 해결에 동의할 수는 없지만, 제도로 해결되지 못하는 악에 대한 그의 분노는 이해할 수 있다.

구의역 사고도 그렇다. 물론 일상적으로 안전장치 없이 무모하게 작업을 하는 경우는 많다. 고압이 흐르는 철주에서, 고층건물 마감공사를 하면서, 용광로나 도크 안에서. 하지만 가시적으로 벌어진 구의역 사고에서부터, 누가 고등학교 갓 졸업한 19살짜리를 사지로 밀어 넣었는가를 따져야 한다. 최소한 2인 1조의 작업원칙이 지켜지고, 역 사무실에서는 모니터링과 기관사에 대한 경고가 있었어야 했다. 매뉴얼을 만들고 하청업체를 감독했어야 했다. 왜 작업을 혼자 하고 알리지 않았느냐는 서울메트로의 반문은 뻔뻔하다. 서울메트로는 퇴직하는 노조원 38명을 월 급여 500여만 원에 은성PSD에서 고용승계하도록 강제했고, 그들이 아무 정비기술도 없으니 작업부담은 고스란히 그 공고졸업생과 같이 월급 144만원 받는 비정규직의 몫이니 말이다.
문제는 그러한 위험하다 못해 무모한 상황을 알면서도 무심했던, 권한을 가진 자들이다. 독일의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유태인 학살의 주범, 악의 화신 아이히만이 의외로 평범한 인물이었다고 썼다. 악의 평범함. 악은 평범해 보이는 무심함 속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제도의 뒤에서 조직적으로 이익을 지키다 보면 죄책감도, 그 조직에 속하지 못한 다른 인간의 삶 역시 얼마나 귀한 것인지 보이지 않는다. 막강한 교섭력을 가진 서울메트로의 노조는 소속조합원과 가족들의 복리를 위해 열심히 일했다고 강변할지 모른다. 고문기술자들의 자식 걱정이 그렇듯이.

김환학 서울대 행정연구소 특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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