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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발견]안견의 팔준도(八駿圖) 이야기

최종수정 2015.11.06 11:12 기사입력 2015.11.06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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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유린청'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유린청'

조선 초의 화가 안견은, 생몰 연대도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은 미스터리 속의 인물이다. 그런데도 많은 역사가와 예술가들은 그를 우리 역사상 가장 뛰어난 화가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의 작품 중에서 진작(眞作)으로 확인된 건 '몽유도원도'뿐이다. 전칭작(傳稱作)들이 있으나 뚜렷한 확증이 없어 모두 의심스럽다.

안견을 말하려면, 우선 팔준도(八駿圖)부터 시작함이 어떨까. 태조 이성계가 탔던 여덟 마리 말을 그린 이 그림은, 조부의 개국 창업을 예찬하기 위해 세종이 안견에게 명해 그리게 한 것이다. 횡운골(홍건적을 물리친 여진산 명마로 '구름을 가로지르는 송골매를 닮은 말'이란 뜻), 유린청(游麟靑ㆍ왜구를 물리쳤던 함흥산 명마로 '기린처럼 노니는 푸른 말'이란 뜻), 추풍오(追風烏ㆍ여진산 흑마로 전쟁터에서 화살 한 발을 맞은 적이 있는 역전의 용사인데 '바람을 쫓아가는 까마귀'란 의미), 발뢰자(함경도 안변 출신의 말로 '벼락을 내뿜는 붉은 말'이란 뜻), 용등자(龍騰紫ㆍ해주에서 왜구를 물리친 단천 출신의 말로 '용이 날아오르는 듯한 자줏빛 말'이란 의미), 응상백(凝霜白ㆍ위화도 회군 때 탔던 제주도 말인데 '서리가 응결한 듯한 흰 말'이란 의미), 사자황(獅子黃ㆍ지리산에서 왜구를 물리쳤던 강화도 말로 '사자처럼 사나운 황색마'란 뜻), 현표(玄豹ㆍ왜구를 떨게 했던 함흥산 명마로 '검은 표범'이란 뜻) 등 8준마가 안견의 붓끝에서 다시 태어났다.

이 그림은 당대에도 많은 지식인들에게 감명을 주었다. 조선이란 나라를 존재하게 한 공적의 위대함을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고도 저 준마들을 열거하는 것만으로 창업자의 위대한 노고와 하늘의 준엄한 뜻을 느끼게 하는 효과를 자아냈을 것이다. 명마들 중에서도 이성계가 가장 아꼈던 말은 횡운골과 유린청이었다고 한다. 횡운골은 홍건적을 유린했던 최고의 공로마였고, 유린청은 화살을 세 개나 맞고도 끄떡없이 싸운 투혼을 지닌 말로 31세로 죽음을 맞았을 때 돌로 관을 짜서 묻어주었던 애마였다. 그리고 위화도 회군의 추억을 지니고 있는 흰 말 응상백 또한 이성계는 잊지 못했을 것이다.

안견의 이 그림은 왕실에 보관되어 있었을 터인데, 임진왜란 와중에 사라지고 말았다. 숙종 대에 어느 사대부가에서 안견 팔준도를 모사한 듯한 그림이 나와 당시 사람들을 흥분시켰다. 화가들이 나서서 열심히 그 그림을 모사했는데 이것이 국립중앙박물관에 남아 있는 화첩이다. 모작을 다시 모사했으니, 안견에서 얼마나 멀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팔준도는 무(武)의 위대함을 고취하는 그림이었지만 안견은 그 이름들처럼 사납고 용감하게 질주하는 전마(戰馬)를 그리지 않고, 평화롭게 쉬는 말들로 표현한 듯하다. 모작들이 그 분위기를 말해준다. 이성계의 팔준(八駿)을 주나라 목왕(穆王)의 팔준으로 승화시킨 셈이다. 목왕은 아름다운 여덟 말을 거느리고 자신의 제국을 느긋하게 순시하는 일을 즐긴 군주다. 안견은 왕국의 전환기에 흙먼지를 일으키며 뛰어다닌 싸움 말들을 진정시켜 태평성대의 평화로운 표정을 짓게 한 것이다. 이 아름다운 뜻을, 그림 주문자인 지혜로운 세종이 몰랐을 리 없다. 문치(文治) 군주였던 그는, 안견의 화의(畵意)를 흐뭇하게 받아들여 당대의 많은 이들과 공유하였을 것이다. 팔준도는 사라졌지만, 그것을 그리워하는 무명씨의 붓끝이 모작을 남겨 아쉽고 서운한 마음을 조금 달래주고 있는 셈이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시인)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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