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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용 칼럼]영화 '사도' 신드롬과 '헬조선'

최종수정 2015.10.19 10:55 기사입력 2015.10.19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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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용 명지전문대 객원교수

윤승용 명지전문대 객원교수

얼마 전 북유럽의 기술교육실태를 둘러보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서울 강남 주부들 사이에 영화 '사도'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기사를 봤다. 많은 강남 아줌마들이 자녀들을 데리고 사도를 관람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강남 주부들이 이 영화에 매료된 배경 분석이 좀 특이하다. 그간 사도세자가 비운의 운명을 맞이한 원인에 대해서는 사학계와 교육학계의 접근 시각에 차이가 있었다. 교육학계에선 자식에 대한 아버지의 과잉기대에서 비롯된 아들의 일탈 행동이 원인이었다고 지적해 왔다. 즉 아버지 영조의 부박한 성격과 역시 이에 못지않은 아들 사도세자의 자유분방한 성정이 정면충돌하면서 비롯됐다는 양비론적 분석이 대세였다. 요즘의 세태를 빗대자면 '국ㆍ영ㆍ수'를 강조하는 아버지(영조)와 예체능에 빠진 아들(사도)의 갈등이 초래한 비극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사도의 일탈 행동보다는 영조의 지나친 교육열이 빚어낸 비극이 주된 원인이라는 주장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하지만 이번 강남 학부모들의 접근은 많이 달랐다. 보도에 따르면 강남 엄마들은 '부모님 말씀 잘 듣고 공부도 열심히 해야 성공한다'는 교훈을 아이에게 심어주려 자식들과 함께 보았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사학계에선 사도세자의 죽음을 당시 심각했던 당쟁의 희생양으로 분석했다. 조선조 중기에는 사색당파, 특히 노론과 소론의 대립이 극심했다. 무수리의 소생인 영조는 자신의 출신배경이 미천함에 대한 자격지심이 많았는데 선왕인 경종이 영조의 독살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는 소문이 나돌자 이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했다. 영조는 친노론적 행보를 함으로써 독살설 무마에 성공하지만 영조에게 반감이 컸던 사도세자는 소론의 편을 들면서 아버지를 의심하게 된다.

그러다 훗날 정조로 등극하는 이산이 사도세자의 아들로 태어나면서 상황이 복잡하게 꼬이게 된다. 이산은 어릴 적부터 매우 영특했는데 이미 사도세자에 대한 기대를 포기한 영조가 이산에게 엄청난 사랑을 베풀자 사도는 더 비뚤어지기 시작한다. 자포자기에 빠진 사도는 더욱 기괴한 행태를 거듭하는데 종국에는 뒤주에 갇혀 죽는 비극으로 치닫게 된다.
이 배경에는 소론, 남인과 친교가 깊었던 사도세자가 만약에 왕이 되면 화를 입을 걸 우려한 노론이 사도세자에 대해 온갖 모함을 했다는 점이 제기된다. 이 와중에 결국 소론을 등에 업은 사도와 노론세력 사이에서 선택해야 했던 영조가 사도를 버리는 쪽으로 마음을 정한 것이 사도의 죽음을 초래했다는 게 당쟁 희생양설의 요체다.

강남 주부들의 사도 관람 열풍 관련 기사를 보고 나니 열흘 남짓 둘러본 북유럽의 교육 실태가 오버랩되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올해 유엔(UN)이 발표한 세계행복지수에서 스위스가 1위를 차지하고 이어서 아이슬랜드, 덴마크, 노르웨이, 핀란드 등 북유럽 국가들이 2위에서 7위를 휩쓸었다. 한국은 중상위권인 47위를 차지했다.

북유럽 국가엔 아예 사교육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고, 대학원까지 무료교육을 받을 수 있고 젊은이들의 경우 본인이 원하기만 하면 거의 100% 취업이 가능한 사회안전망을 갖추고 있다. 굳이 대학을 가지 않아도 공업고등학교를 비롯한 기술교육기관에서 기술을 익히고 용접공이나 자동차 수리공 등 기술자로 취업해도 의사나 변호사 등 전문직에 비해 수익이 별로 뒤지지 않는다. 또한 사회보장제도가 완비돼 있어서 이른바 '저녁이 있는 삶'을 만끽하고 있다.

사도세자가 뒤주에서 숨져가던 그 시절, 조선은 무익한 당쟁으로 날밤을 지새우고 있었지만 유럽은 대해양국가로 발돋움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250여년이 지난 요즘 유럽의 청춘들은 미래에 대한 걱정 없이 인생을 즐기고 있는데 한국의 3포 세대 젊은이들은 '헬조선'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다. 북유럽 국가들은 요즘 여야가 머리를 맞대 미래 세대의 먹거리와 인류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데 한국에선 때 아닌 '국정교과서' 문제를 놓고 여야가 대치하고 있다. 역사가 아무리 반복된다 하지만 3세기 전의 헬조선이 여전히 지속되는 한 한국의 '헬조선 탈출'은 요원해 보인다.

윤승용 서울시 중부기술교육원장, 명지전문대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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