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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발견]개소리에 내몰리는 나그네 최북

최종수정 2015.09.18 11:08 기사입력 2015.09.18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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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북의 '풍설야귀인'

최북의 '풍설야귀인'

최북(崔北ㆍ1712~1760(?))의 그림 중에서 하나만을 꼽으라면, 나는 기꺼이 '풍설야귀인(風雪夜歸人)'을 집어낸다. 조선의 어떤 화가와도 다른 인상적인 먹기운과 꿈틀거리는 형상들이, 한번 마주치면 잊어버리기 어렵게 만드는 작품이다. 이 그림은 붓이 아닌 손끝으로 그린 지두화라고 하나, 손가락만으로 그린 것 같지는 않다.

웅크린 움막 같은 집의 지붕이 살짝 보이고 집 앞엔 나무울타리가 넘어질 듯 불안하다. 대문을 사이에 두고 큰 나무가 두 그루 서있는데, 마침 불어오는 거센 바람에 모든 가지를 옆쪽으로 날리고 있다. 집 뒤에는 큰 벼랑이 있고 앞에는 개천이 보인다. 하늘 부분은 오히려 어둑하고 컴컴한데, 눈이 내린 산과 집들과 언 개천은 희다. 개천을 타고 앞쪽에서 불어오는 눈보라가 집을 통째 삼킬 듯한데, 묵중하게 돋은 산들은 그저 병풍처럼 묵묵할 뿐, 한기를 가려주진 못한다. 이 오두막집 풍경은 놀랍게도 100년쯤 뒤에 그려진 추사 세한도를 연상시킨다. 둥근 창을 단 집 모양새가 그렇고 집을 둘러싼 나무들과 백설천지가 닮았다. 추사는 최북의 이 그림을 보았던가. 세한도는 거기서 그쳤지만 '풍설야귀인'은 스토리가 더 구체적으로 나아가 있다.

집 대문 앞에는 검둥개 한 마리가 종종 걸음으로 뛰쳐나오며 짖어댄다. 비교적 멀리서 본 풍경인데도 최북은 입을 벌린 개를 또렷이 그렸다. 개가 짖는 까닭은 한밤중의 행인들 때문이다. 허리를 굽히고 지팡이를 짚은 어른과 보자기 따위를 머리를 감싼 아이가 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걸어가고 있다. 언덕과 개천얼음 위에 쌓인 눈을 쓸어올리는 눈보라가 그 뺨들을 후려치고 있음에 틀림 없다. 이 사람들은 집에 도착한 게 아니라, 아직 갈 길이 멀다. 검둥개는 낯선 이들을 경계하는 것이지만, 등 뒤에서 들려오는 사나운 개짖음은 이들을 더 움츠리게 한다. 살을 벨 듯한 바람소리와 당장 달려와 물듯한 개소리가 귀를 찢고, 닥쳐드는 바람이 눈을 못 뜨게 하는데, 캄캄한 밤 속을 누비는 희끔희끔한 눈보라가 고독과 심란을 키우는 중이다.

'풍설야귀인'은 당나라 시인 유장경(劉長卿)의 시 구절이다. 유장경은 강직하고 자존심이 강했으며 5언시를 많이 썼기에 '오언장성(五言長城)'이라 불렸다. '풍설야귀인'이란 시는 그가 모함을 당해 좌천될 무렵의 참담하고 쓸쓸한 심경을 담는다. "해는 저문데 푸른 산은 멀고 / 하늘은 차고 초가는 초라한데 / 사립문에 들리는 개짖는 소리 / 눈보라 치는 밤에 돌아온 사람 (日暮蒼山遠 天寒白屋貧 紫門聞犬吠 風雪夜歸人)"

유장경의 시는 마침내 집에 당도한 사람의 안도감을 담았지만, 최북은 이 상황을 비틀어 아직도 귀가하지 못한 채 어느 집 사나운 개의 짖는 소리에 쫓기듯 지나가는 나그네의 황망하고 고달픈 심경을 그렸다. '평생 삶에 안착하지 못한 자신'이 개소리에 내몰리는 풍경. 가슴을 후벼파는 무엇이 그림의 행간에 있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시인)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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