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크린 움막 같은 집의 지붕이 살짝 보이고 집 앞엔 나무울타리가 넘어질 듯 불안하다. 대문을 사이에 두고 큰 나무가 두 그루 서있는데, 마침 불어오는 거센 바람에 모든 가지를 옆쪽으로 날리고 있다. 집 뒤에는 큰 벼랑이 있고 앞에는 개천이 보인다. 하늘 부분은 오히려 어둑하고 컴컴한데, 눈이 내린 산과 집들과 언 개천은 희다. 개천을 타고 앞쪽에서 불어오는 눈보라가 집을 통째 삼킬 듯한데, 묵중하게 돋은 산들은 그저 병풍처럼 묵묵할 뿐, 한기를 가려주진 못한다. 이 오두막집 풍경은 놀랍게도 100년쯤 뒤에 그려진 추사 세한도를 연상시킨다. 둥근 창을 단 집 모양새가 그렇고 집을 둘러싼 나무들과 백설천지가 닮았다. 추사는 최북의 이 그림을 보았던가. 세한도는 거기서 그쳤지만 '풍설야귀인'은 스토리가 더 구체적으로 나아가 있다.
'풍설야귀인'은 당나라 시인 유장경(劉長卿)의 시 구절이다. 유장경은 강직하고 자존심이 강했으며 5언시를 많이 썼기에 '오언장성(五言長城)'이라 불렸다. '풍설야귀인'이란 시는 그가 모함을 당해 좌천될 무렵의 참담하고 쓸쓸한 심경을 담는다. "해는 저문데 푸른 산은 멀고 / 하늘은 차고 초가는 초라한데 / 사립문에 들리는 개짖는 소리 / 눈보라 치는 밤에 돌아온 사람 (日暮蒼山遠 天寒白屋貧 紫門聞犬吠 風雪夜歸人)"
유장경의 시는 마침내 집에 당도한 사람의 안도감을 담았지만, 최북은 이 상황을 비틀어 아직도 귀가하지 못한 채 어느 집 사나운 개의 짖는 소리에 쫓기듯 지나가는 나그네의 황망하고 고달픈 심경을 그렸다. '평생 삶에 안착하지 못한 자신'이 개소리에 내몰리는 풍경. 가슴을 후벼파는 무엇이 그림의 행간에 있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시인)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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