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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발견]겸재의 얼굴, 인곡유거와 인곡정사

최종수정 2015.08.28 11:09 기사입력 2015.08.28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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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 정선의 '인곡유거(仁谷幽居)' '인곡정사(仁谷精舍)'

겸재 정선의 '인곡유거(仁谷幽居)' '인곡정사(仁谷精舍)'

아파트는 집이다. 그러나 얼굴을 지닌 집일까. 집이 내부만을 지닐 때, 그곳에 기거하는 사람은 복면을 한 것과 다름없다. 집이 얼굴을 지닌다는 것, 집이 주인의 얼굴 모양을 닮아가거나 주인의 생각과 그릇과 삶의 모양새를 닮아가는 것, 혹은 집이 주인처럼 소박해지거나 거만해지는 것. 옛사람들은 집의 정체성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았다.

겸재 정선(1676-1759)의 그림 '인곡유거'는 인왕동 골짜기에 있던 자신의 집을 그린 것이다. 집을 바라보고, 그 안에 들어있는 자신을 바라보는 나르시시즘은, 자신을 객관화하는 하나의 방편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자신이 바라보는 자신을, 다른 사람의 눈 앞에 내놓고 함께 공유하고 싶은 욕망이기도 하리라. 인곡유거가 있던 자리는 종로구 옥인동 20번지 부근이다. 군인아파트가 들어서 있던 자리다. 인곡은 인왕곡(仁王谷)의 준말이다. 당시 이곳의 주소는 순화방 창의리 인왕곡이었다. 유거는 외딴 집을 말한다. 당시 인왕곡에 집들이 띄엄띄엄 있었음을 의미한다. 인곡유거에 정선이 살았던 때는 52세부터 84세까지다.

겸재의 '인곡유거'는 인곡시절 32년 중 비교적 이른 시절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인곡정사'를 그린 때가 71세(1746년)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60세 무렵일 가능성이 크다. '인곡유거'와 '인곡정사'가 같은 집을 그린 것이라면 인곡정사에는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서있다. '인곡유거' 에는 널찍한 마당에 큰 두 그루 나무가 눈에 띈다. 하나는 버드나무이며 하나는 오동나무이다. 두 나무들은 마당의 한 복판에 서 있는 듯 보이지만 실은 앞쪽에 있는 나무들 때문에 생긴 착시 현상이다.

인곡정사는 건물의 전경이 드러나있다. 행낭채가 붙은 솟을대문이 들어서 있고 디귿자 모양의 안채가 있는 집이다. 안채로 들어가는 중문이 있고 직각의 굽은 담을 친 동향문은 아까 '인곡유거'에서는 지붕만 보이던 것이었다. 돌출한 담장에는 동향으로 선 헛간이 일자 초가로 지어져 있다. 나무들의 배치는 인곡유거와 일치하지 않는다. 10여년 간에 걸친 이 집의 변화를 말하는 것이라면 그럼직도 하다고 말할 수 있겠으나 두 개의 다른 집을 놓고 공연히 같은 건물로 꿰맞추는 것이라면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당시 겸재의 그림값이 집 한 채 값이었다. 수입이 좋았으니 그는 집을 넓히고 증축하는 일을 했을 것이다. 유거(幽居)와 정사(精舍)는 둘 다 집을 가리키는 뜻이지만, 정사 쪽이 훨씬 크고 널찍한 집을 의미할 가능성이 있다. 원래 겸재의 얼굴은 '유거'처럼 소박하고 친자연적이었으나, 세상에서 유명해지고 권세와 부귀를 누릴수록, '정사'의 모습으로 권위를 갖춰갔을 것이다. 삶의 양상과 마음의 형국을 저 집을 통해서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리라.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시인)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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