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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발견]겸재의 쉰살眞景

최종수정 2015.08.07 11:15 기사입력 2015.08.07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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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 정선의 '내연삼용추'

겸재 정선의 '내연삼용추'


청하현감 시절은 짧았지만 그가 내연산이라는 영남 오지 특유의 굳세고 청신한 자연과 대면한 또 하나 일생일대의 계기였다. 내연산은 정말 놀라운 산이었다.

낙동정맥의 줄기가 주왕산을 밀어젖히며 내려오다가 동해안으로 고개를 들어 완만한 능선을 이뤘는데 문수산, 향로봉, 삿갓봉, 천령산의 준봉이 반달처럼 둘러쳐져 청하계곡을 품었다. 35리의 계곡 양쪽이 깎아지른 절벽으로 나란히 뛰어오며 폭포와 소(沼)가 널렸다. 사자쌍폭(상생폭), 보현폭, 삼보폭, 잠룡폭, 무풍폭, 관음폭, 연산폭까지 일곱 개가 빼어나며 은폭과 시명폭, 실폭, 복호폭 2개가 합쳐져 열두 폭을 이룬다. 겸재는 이 열두 폭을 세 개의 용추(龍湫)로 해석해 3절로 꺾이는 하강의 대향연을 표현해 낸다. 조선엔 90여개의 용추가 있었지만 내연산 용추를 으뜸으로 친다.

정선은 이곳에서 '내연삼용추도' 2점과 '내연산 폭포도', 그리고 부채그림인 '고사의송관란도(高士倚松觀瀾圖ㆍ뜻 높은 선비가 소나무에 기대어 폭포수를 보다)'를 그렸다. 이 화가가 포항에서 그린 그림이 왜 중요하고 화격(畵格)이 높은가. 30대 금강산에서 이뤄낸 진경산수의 성취가 60대 길목에 내연산에 이르면서 산수에 대한 인식의 전환으로 나아가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무슨 얘기냐 하면, 금강산 그림은 울뚝울뚝 솟아오른 바위산의 생명력과 기운을 표현해 낸 것인 반면 내연산 폭포도는 거대한 바위를 타고 물이 추락하는 처연한 비장미와 장엄함이 드러났다 할 수 있다. 30대와 60대. 그 인생의 모양새와도 닮아있지 않은가. 올라가는 길의 생기와 내려가는 길의 깊은 인식. '내연삼용추도'는 조선의 삼엄한 추락진경(墜落眞景)을 담아낸 겸재정신의 한 절정이리라.

겸재라는 호의 겸(謙)은 '겸손하다'는 의미로 주역의 한 괘이기도 하다. 이를 지산겸(地山謙)이라 하는데 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지산겸은 하는 일을 완성하는 끝맺음의 괘이다. 하늘의 도는 가득 찬 것에서 덜어내 모자라는 것에 보태주고 땅의 도는 가득 찬 것을 비워 모자라는 것에 흘러든다. 겸손한 자는 존귀한 자리에 있으면 빛나지만, 비천한 자리에 있어도 남이 얕보지 못하니 군자가 지녀야 할 최후의 미덕이다." 정선이 영남의 끝자락에 와서 깨달은 것은 무엇일까. 올라감에 취해 치솟는 산처럼 살았던 삶을 돌아보고, 마침내 스스로를 낮추는 물의 겸허를 되찾는 인식의 대전환이 아니었을까. 이 그림을 보며 대자연의 섭리를 완성하는, 굽이치는 낙폭(落瀑)의 현기증까지를 읽어내야 우린 비로소 '조선의 진경산수'를 맛보았다 할 것이다. 겸재는 이 그림을 그린 뒤 평생을 외롭고 고단하게 살아온 홀어머니 밀양 박씨의 부고를 받았으며 부랴부랴 벼슬을 내려놓고 서울로 올라간다. 인생은 이렇지 않던가.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시인)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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