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r_progress
[AD]

아시아경제 최신 기획이슈

[그림의 발견]청나라 '낭세녕 르네상스'

최종수정 2015.07.17 10:46 기사입력 2015.07.17 10:46

댓글쓰기

낭세녕 '백준도'의 일부.

낭세녕 '백준도'의 일부.


낭세녕(郎世寧). 이탈리아 이름은 주세페 카스틸리오네(Guiseppe Castiglioneㆍ1688~1766). 밀라노의 산 마르첼리노에서 태어나 유럽교회의 벽화를 그리기도 했던 그는 스물일곱 살 때 청나라로 왔다. 예수회 선교사로 파견되었으나, 그는 이후 평생 청나라 황실의 궁정화가로 지냈다.

1715년 강희제(재위 1661~1722년)가 지금껏 본 그림과 전혀 다른 그림을 그려내는 이 푸른 눈의 화가에게 큰 관심을 가졌다. 마카오를 경유하면서 중국어를 이미 배워온 그는 황제와도 서투르지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는 곧 황실의 회화제작부서인 여의관에서 일하게 된다.

어느 고즈넉한 밤, 중국의 궁궐에서 잠을 청하는 스물일곱 살 낭세녕을 생각해 본다. 그가 받은 문명충격 또한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글로 읽었던 오리엔트 이야기가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가슴 속에는 서양화의 리얼리즘과 채색기법들이 숨쉬고 있었지만 눈앞에는 간결하면서도 비현실적인 풍경화들만 잔뜩 보인다. 서양과 동양이 한 사람 속에서 버무려진다. 이후 펼쳐질 그의 생 51년은 서양의 동양화 혹은 동양의 서양화가 한 심장 안에서 융합되는 거대한 소용돌이였을 것이다. 두 개의 문명은 한 인간의 영혼 아래서 수천 년 이격(離隔)의 날들의 서먹함을 걷고 극적인 해후를 한다.

낭세녕의 회화는 컬러와 원근법, 빛을 강조하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의 전통 속에서 출발했다. 그는 우선 중국 그림들이 다뤄온 소재들을 서양화 화법으로 다시 표현해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음영법과 입체감은, 리얼리즘을 가볍게 여겨온 동양의 지식인들에게 큰 충격을 준다. 당시 중국에는 말 그림이 유행하고 있었는데, 낭세녕은 이 방면에도 뛰어난 솜씨를 보였다. 그가 그린 백준도(百駿圖)는 백 마리의 말이 노는 모습을 그린, 장대한 작품으로 그의 명성을 드높였다.

백준도 사본은 1900년대 이후 이 땅에도 흘러들어와 소장붐을 불러일으켰던 적이 있다. 이 그림은 강희제의 대를 이은 옹정제 때 그린 작품(1728)으로, 그의 초기작에 속하며 서양의 리얼리즘 화풍을 충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낭세녕 이전의 청나라와 낭세녕 이후의 청나라는 동양미술사의 개벽이라 할 만큼 회화의 안목과 관점이 달라졌다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동양의 회화가 지닌 독특하고 심원한 경지를 쉽게 폄훼할 수는 없지만 서양에서 온 화가 한 사람이 일으킨 '낭세녕 르네상스'가 동양 회화를 업그레이드한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조선의 겸재 정선(1676~1759)은 거의 낭세녕과 같은 시대를 살아간 사람이다. 겸재의 진경산수 또한 청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리얼리즘의 공기를 부지불식간에 호흡한 결과가 아닐까. 빈섬 이상국(편집부장ㆍ시인)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간격처리를 위한 cla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