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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공부의즐거움]그는 부끄러움이 없었을까

최종수정 2015.07.16 11:19 기사입력 2015.07.16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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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공부의즐거움]그는 부끄러움이 없었을까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 했다.
-윤동주의 '서시'중에서

윤동주의 이 염결(廉潔)에 나는 옷깃을 여민 게 아니라, 기가 질렸다. 어떻게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을 수 있는가. 열 몇 살 그때부터 이미 이것저것 감추고 숨기는 것을 터득하고 있었고, 이 관계 저 관계들에서 한결같이 공명하고 투명하기 어렵다는 걸 절감하고 있던 나로서는, 하늘을 들이대면서 얼룩 한 점을 내무검사하는 저 윤동주의 발언이야 말로, 무시무시한 언어의 테러에 가까웠다. 인간의 부끄러운 조건들을 모두 털어내고 완전무결한 존재로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정말, 모든 시선과 검열을 견딜 수 있는 떳떳함을 갖추는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그때의 의문에, 삼십년이 지난 지금도, 답하기 어렵다. 유가(儒家)의 앙불괴어천(仰不愧於天)이 시인의 감성에 녹아든 것이라는 걸 알긴 했지만, 맹자나 윤동주가 '하늘' 앞에 투명한 자신을 단언하고 지나간 자리에서, 나는 구리고 흠 많은 삶을, 하늘의 부라린 시선을 슬금슬금 피해가며 살아왔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저들은 저런데 나는 어이 이런가.

어느 날 문득, 저 시를 곰곰이 뒤집어 보다가, 내 딴에 핑계를 하나 찾아냈다. 나라 잃은 시인이, 정말 떳떳해서 저런 말을 한 게 아닐 거라는 짐작이다. 저래야 하는데, 저럴 수 없는 바로 그 마음을 말하기 위해서, 가슴 속에서 돋아난 한처럼 저 엄정한 기준을 뱉지 않았을까. 식민지 세상을 무릎걸음으로 걸어나간 이 시인에게, 비루(鄙陋)한 삶을 요구하는 강자의 억압이 얼마나 드셌을까. 저 시 속의 진상은 앞에 있는 게 아니라 뒤에 있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고문을 당한 사람은 의자나 주전자만 봐도 치를 떤다. 잎새에 이는 바람이란, 아주 사소하고 일상적인 징후이지만 시인을 괴롭게 하는 무엇이다. 이 과민은, 작은 징후마저 단속하려는 시인의 높은 품격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그에게 수치감을 불러일으키는 무엇에 대한 노이로제에 가깝다. 그는 온 생애를 겁탈당한 듯 부끄러웠고 괴로웠다. 그러나 그가 말할 수 있는 건, 스스로에게 닥친 이 문제상황이, 자신의 잘못 때문에 온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저 이유도 모른 채 인생 통째로 봉변당했을 뿐이다. 그래도 당한 건 당한 것이니, 세상의 눈에는 더 없이 부끄러울 일이지만, 하늘의 눈에야 어디 이것이 부끄러움이라 하겠는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이란 말은, 그런 몸부림같은 강변(强辯)이리라.
빈섬 이상국(편집부장.시인)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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