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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공부의 즐거움]수락산에서 김시습을 만나다

최종수정 2015.07.09 11:15 기사입력 2015.07.09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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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점 두 점 떨어지는 햇살 밖
세 마리 네 마리 외로운 오리들 돌아가네
가는 기러기는 낮게 돌며 산을 넘지 못하고
찬 까마귀는 앉으려다 도로 놀라 날아가네
하늘 밖으로 눈을 부릅떠 본다, 천의(天意)에도 어찌 한계가 있단 말인가
붉은 빛을 모아 뒤집어진 햇살이 맑은 하늘 빛을 흔드네

一點二點落霞外 일점이점낙하외
三介四介孤鶩歸 삼개사개고목귀
去雁低回不能度 거안저회부능도
寒鴉欲棲還驚飛 한아욕서환경비
天外極目意何限 천외극목의하한
斂紅倒景搖晴暉 렴홍도경요청휘

-김시습의 '수락잔조(水落殘照ㆍ수락산 노을무렵)'

남양주 별내면의 청학동 방향으로 오르는 수락산은 저 너머 서울 상계동에서 오르는 길과는 전혀 다른 산같은 느낌이 있다. 동쪽 자락엔 김시습이 세조 왕위 찬탈 이후에 은거했다는 폭천정사(瀑泉精舍ㆍ폭포와 샘의 절간)가 있었다. 1472년에서 1480년 쯤의 8~9년간의 일이다. 은거지의 자취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지만 인조, 숙종대의 사람인 남용익(1628~1692)의 기록(간폭정기)에 의하면 옥류폭포 옆에 간폭정이 있고, 그 정자의 5리 위에 매월당의 은거지가 있었다고 하니 그 위치를 어림짐작해 보면 228개의 돌계단을 숨차게 오른 뒤 만나게 되는 금류동천(金流洞天)이라 새겨놓은 바위 부근쯤 된다.

노을의 귀환과 오리의 귀환이 서로 뒤뚱거리며 겹쳐지고, 기러기와 까마귀가 남은 햇살 아래서 어쩔 줄 몰라 쩔쩔맨다. 천하의 대의는 분명하고 우주의 섭리는 한치 오차도 없고 어김도 없을 것이라 믿기에 두 눈을 부릅뜨고 저 노을이 천하를 버리고 산 아래로 가버리는 것을 노려본다. 대체 하늘의 그 빛은 어디로 가버린단 말인가. 이것이 김시습의 통절하고 고통스러운 심경의 풍경이다. 마지막 구절이 수락산을 넘어, 한 시대 두 시대를 넘어 세 사람 네 사람을 넘어, 지금 나를 흔든다. 붉은 빛을 모아 뒤집어진 햇살. 노을을 이렇게 표현하는 사람 봤는가. 그게 무엇인가. 세상의 이치를 뒤집어놓고 조선을 피바다로 만들어놓은 그 어이없는 권력의 모양새가 아닌가. 그것이 밝은 하늘 빛을 뒤흔들고 있지 않은가. 이 시가 살아남은 것은 극심한 격정을 담고 있지만, 오직 노을일 뿐이요 노을 이외의 어떤 표정도 담지 않았다는 것이다. 누가 제 풀에 켕겨 시비 걸 수 없을 만큼 태없이 장엄하다. 아름답고 비감한 김시습의 눈길과 마음결을 한번 만나고 온 것만으로도 수락산행은 잊지 못할 것이다.
빈섬 이상국(편집부장ㆍ시인)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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