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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공부의 즐거움]사야(史野), 허울과 바탕에 관하여

최종수정 2015.06.26 14:53 기사입력 2015.06.18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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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의 글씨로 추정되는 '사야'

추사 김정희의 글씨로 추정되는 '사야'


허울(史)은 무엇일까. 돈 그 자체는 허울에 가깝다. 얼굴도 허울이고 신체 외양도 허울이다. 옷도 허울이며 화장도 허울이다. 아버지의 재산도 허울이고 내 아파트도 허울이고 내 차도 허울이고 내 골프채도 허울이며 사교도 허울이다. 내 직업도 직급도 허울이며 연봉도 허울이며 마누라 얼굴도 허울이다. 학력도 허울이고 동창들의 면면도 허울이다. 말도 허울이며 글도 허울이며 TV도 허울이고 영화도 공연도 허울이다. 모든 비주얼은 허울의 다른 이름이다.

허울의 안쪽에 있는 바탕(野)은 무엇일까. 그건 뜻밖에 간단하다. 그 사람의 됨됨이가 바탕이다. 그 사람의 내면이 바탕이다. 생각하는 것, 마음먹는 것, 분별하는 것, 선택하는 것, 좋아하고 싫어하는 근본적인 태도가 바탕이다. 그 사람을 그 사람이게 하는 것이 바탕이다.

허울은 잘 보이고 바탕은 잘 보이지 않는다. 허울은 쉽고 바탕은 어렵다. 허울은 유통되기 쉽지만 바탕은 소통하기 어렵다. 모든 것에 값을 매기는 시장(市場)의 신도들은 모든 허울을 한 줄로 세워 가치를 매기고 그 허울을 사람의 가치와 동일시하는 안목을 유행시켜왔다.

공자가 이 문제를 거론한 것은 글쓰기에서였다. 바탕(質)이 허울(文)보다 앞서면 거칠어진다.(質勝文則野). 표현하고자 하는 뜻이 아무런 장식 없이 노출되면 글이 거칠어진다. 허울도 필요하다는 얘기이다. 글을 쓰는 기교를 무조건 배격할 것이 아니라 바탕을 잘 표현해내는 솜씨가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또 허울이 바탕을 앞서면 사(史)해진다.(文勝質則史). 사(史)는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들의 글쓰기를 꼬집은 말로 화사한 말로 잘 꾸며내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식으로 표현하자면 '번드르르해진다'에 해당할 것이다.

공자는 문(文)과 질(質)이 둘 다 잘 갖춰져 함께 빛나는 것이(彬彬), 훌륭한 글이라고 말했다. 문질빈빈의 생각은 내용만을 중시하고 기교를 배격하는 것도 옳지 않고, 내용보다 기교에만 치중하는 태도도 옳지 않다는 것을 천명한 것이다. 추사는 어느 날 '사야(史野)' 두 글자를 썼다. 내용도 중요하지만 형식도 중요하다는 얘기다. 글은 깊이를 담아야 하지만 주의를 기울여 제대로 쓰는 것도 중요하다.
빈섬 이상국(편집부장ㆍ시인)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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