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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명칼럼]개각대상 1순위 후보를 추천함

최종수정 2015.02.03 15:14 기사입력 2015.02.02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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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명 논설위원

이주명 논설위원

이건 아니다. 다 된 밥을 안 됐다고 하면서 열려던 솥뚜껑을 다시 닫고 이거나 먹고 떨어지라며 쉰밥을 내놓은 격이다.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 이야기다.

소득 중심으로 건보료 부과체계를 개편해 그 형평성을 높이는 일은 박근혜정부의 공약일뿐더러 국민적 공감 폭이 넓은 사안이다. 보건복지부는 구체적인 개편안 마련을 위해 2013년 7월 전담 기획단을 꾸려 1년6개월째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그 기획단의 논의 결과를 발표하기로 한 날 하루 전인 지난달 28일 문형표 복지부 장관이 '연내 추진 중단'을 선언했다. 언제 재개한다는 말은 안 했으니 '무기한 연기'이고, 사실상 '안 하겠다'는 얘기다. 내년에 총선, 후년에 대선이 있는 정치일정상 설사 하려고 해도 현 정부 임기 내엔 하기 어렵다.

비난 여론이 들끓자 후속 코미디극이 펼쳐졌다. 바로 다음 날 청와대가 '전적으로 복지부 장관이 결정한 것'이라며 책임을 피했고, 다시 그 다음 날 복지부는 뜬금없이 '연소득 500만원 이하 지역가입자에 한해 건보료를 연내에 낮추겠다'고 발표했다. 쉰밥도 이런 쉰밥이 없다. 모욕감마저 든다.

건보료 개편의 취지는 그런 게 아니다. 심상정 정의당 원내대표가 잘 지적했다. '생활고로 자살한 송파 세 모녀에게는 5만원대가 부과됐는데, 수백억 원 자산가인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는 2만원대만 부과된다.' 김종대 전 건보공단 이사장은 고백했다. 재산 5억원에 연간 수천만 원의 연금소득이 있는 자신은 직장에 다니는 아내의 피부양자가 되어 건보료를 한 푼도 안 낸다고. 이런 걸 고치자는 것이 건보료 개편이다. 못사는 사람들에게 적선하자는 것이 아니다.
건강보험은 국민 모두의 사회적 연대를 기본원리로 하는 공적 강제보험이다.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누구나 가입된다. 그렇기에 그 부담인 건보료 부과의 형평성은 무조건, 절대적으로, 당장 확보돼야 한다. 그런데 현행 건보료 부과체계는 그렇지 못하기에 바로잡자는 것이다.

기획단에서 논의돼 온 방향으로 부과체계를 개편하면 지역가입자의 80% 정도인 600여만명의 건보료 부담이 줄어든다고 한다. 대신 고소득 직장가입자와 소득이 꽤 있는 피부양자를 더해 약 45만명은 건보료를 더 내야 한다. 정부는 이 45만명의 반발을 무서워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그중의 절대다수, 아마도 90% 이상은 사회적 연대에 대한 공감에서건 노블레스 오블리주에서건 건보료를 좀 더 부담하는 데 크게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이젠 그 정도는 된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정부가 연초 불거진 연말정산 파동이 건보료 개편 문제에서 재연될까봐 두려워한 나머지 한다, 안 한다, 맛만 낸다 하며 우왕좌왕하고 있다. 자신이 없는 것인지, 국민을 믿지 못하는 것인지, 국민을 졸로 보는 것인지는 정확히 가릴 수 없다. 그러나 복기해보면 국민을 기만하려 한 혐의는 짙다.

특히 건보료 개편 중단이 복지부 장관의 단독 결정이라는 청와대 대변인의 발언은 믿기 어렵다. 사회복지의 기본이자 온 국민에게 영향을 주는 건강보험 제도를 손보는 일을 아무리 주무장관이라도 그 혼자 결정할 수는 없다. 이런 일을 조율하라고 최근 청와대 비서실에 정책조정수석이라는 자리가 신설되고, 거기에 현정택 전 한국개발원(KDI) 원장이 임명된 것 아닌가. 이번 일이 현 수석의 첫 작품인지 여부가 궁금하고, 김기춘 비서실장의 관여 여부도 알고 싶다.

박근혜 대통령이 조만간 개각을 단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개각 일순위 대상자로 문 장관을 추천한다. 압력이 있었든 혼자 판단이었든, 건보료 개편 중단 사태는 복지부 장관으로서 그의 결격을 웅변한다. 그래도 몸소 금연을 공연하며 담뱃값 인상의 명분을 보강한 공은 있으니 개각 발표 전에 모양 좋게 자진사퇴할 기회를 주는 것도 괜찮겠다.


이주명 논설위원 cml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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