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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아침]해적, 군인, 탐험가...프란시스 드레이크

최종수정 2015.01.27 08:37 기사입력 2015.01.27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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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백재현 뉴미디어본부장]1596년 오늘은 영국의 탐험가이자 군인이면서 유명한 해적이었던 프란시스 드레이크(Francis Drake)가 파나마 인근의 배위에서 이질로 사망한 날입니다. 향년 55세.

프란시스 드레이크는 역사책에서는 크게 다루어지지 않은 인물이지만 영국 역사에서는 제법 중요한 인물입니다. 그는 노예 무역을 했고 해적질을 했지만 결국에는 해군 제독이 되어 무적함대 스페인을 누르고 ‘해가 지지 않는 영국’을 만드는데 크게 기여한 인물이니까요.

드레이크는 1543년 남부 잉글랜드에서 농부의 12명 아들 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영국 최초의 노예 무역상인 삼촌 존 홉킨스 밑에서 노예 무역을 하던 어느 날 스페인 함대의 기습공격으로 거의 전멸하고 자신은 겨우 목숨만 살아옵니다. 이 경험은 드레이크로 하여금 평생을 두고 스페인에 대한 복수심을 갖게 합니다.

당시 영국과 스페인의 해군력은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압도적으로 스페인이 우위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드레이크는 복수심으로 서인도 제도의 스페인 선박이나 식민지 마을을 습격했습니다. 해적질을 한 것이죠.

특히 1573년에는 파나마에서 스페인 왕의 보물을 잔뜩 실은 카카푸에고 호를 공격해 어마어마한 재물을 획득합니다. 그 금액이 얼마나 컸던가 하면 당시 잉글랜드의 국고 세입을 훨씬 넘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 드레이크가 거친 항로는 마젤란에 이은 세계 두 번째의 세계 일주였습니다. 드레이크를 탐험가로 부르는 이유 입니다.
한편 재정에 큰 타격을 입을 만큼 막대한 보물을 빼앗긴 스페인은 영국에다 드레이크를 처벌할 것을 강력히 요구합니다. 그러나 엘리자베스 여왕은 그럴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드레이크가 획득한 보물들을 일부 투자자들에게 돌려주는 것을 제외하고는 고스란히 엘리자베스 1세에게 헌납했기 때문이죠.

잇단 전쟁으로 궁핍해질 대로 궁핍해진 영국 왕실에게 드레이크는 고마운 존재였으니까요. 포박해서 스페인으로 보내기는커녕 여왕은 친히 드레이크의 배로 가서 그에게 작위를 내리고 해군 제독에 임명합니다. 또 영국의 해군을 내주면서 드레이크의 해적활동을 도와줍니다.

드레이크는 스페인과의 역사적인 해전인 아르마다 해전에서도 부사령관으로 임명돼 화공(火攻)으로 큰 공을 세웁니다. 그러나 드레이크는 사령관의 지시를 어기고 독단적으로 약탈에 몰입하다 함대를 잃어버리는 실수를 저지르지만 약탈한 재물을 여왕에게 바치면서 오히려 승리의 영광을 독차지하는 듯 비쳤습니다.

프란시스 드레이크, 그는 분명 스페인 사람들에게는 노예상이요 해적에 불과한 나쁜 인물이지만 영국에서는 인기를 얻은 묘한 사람이었습니다.


백재현 뉴미디어본부장 itbri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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