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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아침]"주사위는 던져졌다"

최종수정 2015.01.30 09:57 기사입력 2015.01.12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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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백재현 뉴미디어본부장]
오늘은 기원전 49년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루비콘 강을 건넌 날입니다. 그의 도강(渡江)은 500년 전통의 로마 공화정을 몰락시키고 지중해는 물론 세계 역사에 큰 변화를 낳습니다. 강을 앞에 두고 그가 했다는 "주사위는 던져졌다"는 말은 결단의 상징으로 두고두고 사용되죠.

백재현 뉴미디어본부장

백재현 뉴미디어본부장

당시 카이사르의 입장은 정말로 주사위를 던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인기 높은 집정관이었던 그가 7년 이라는 짧은 기간에 북부 이탈리아, 프랑스, 벨기에, 스위스 서부 그리고 라인강 서쪽의 독일을 포함하는 광대한 갈리아 지역을 평정하자 로마에서 그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듯 했습니다. 이를 두려워한 원로원과 귀족들은 카이사르에게 군대를 해산하고 단신으로 로마로 돌아올 것을 명합니다. 카이사르에게는 죽으러 오라는 말과 다름없었던 것이죠.

결국 그는 군대를 이끌고 로마로 진격해 절대적 수적 우위에 있던 폼페이우스와 귀족들을 물리칩니다. 이후 황제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음에도 로마시민들의 마음을 정확히 파악한 그는 사양하고 대신 '종신 독재관'에 오릅니다. 그는 확실이 정치적 감각이 있었습니다. 사실 허울뿐이라도 공화정을 지키고 싶어한 귀족들이 그에게 ‘종신 독재관’의 자리를 줍니다.

사실상 황제와 같은 권력을 쥔 카이사르는 달력을 개정하고 통화를 개혁했으며 시민권을 확대하고 사법개혁, 복지정책, 식민지정책, 건설 사업 등 사회 각 방면에 새로운 정치를 펼쳐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다재다능했던 자신의 능력을 발휘한 것이죠.

그가 던진 주사위가 옳았음을 스스로 증명한 셈입니다. 결과적으로 카이사르는 귀족 중심의 공화정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웠던 대제국 로마 건설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나나미는 카이사르를 '로마사 최고의 천재'라 칭송했습니다. 로마인 이야기 4권과 5권은 온전히 카이사르에 대한 이야기로 채운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마키아벨리는 카이사르에 대해 좋지 않게 평가하긴 했지만 분명 카이사르는 매력적인 외모에 뛰어난 언변을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시대의 흐름을 읽을 줄 아는 정치가이기도 했습니다. 여자들에게도 인기가 많았었구요.

그는 56년의 생애 중 30여년을 정치활동을 했습니다. 1천년 로마역사에 비하면 너무도 짧은 기간이지만 그가 끼친 영향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귀족들의 반발로 카이사르는 잔혹하게 살해 당합니다. 그의 무덤조차 없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죽음은 공화정 몰락을 부추깁니다. 카이사르의 후계자 옥타비아누스가 카이사르의 1인 독재 보다 한 발 더 나아가 황제에 자리에 올랐기 때문입니다. 귀족들이 이를 도와준 셈이죠.


백재현 뉴미디어본부장 itbri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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