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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찬 칼럼]정치가 국민을 찾을 때와 떠날 때

최종수정 2014.10.13 11:05 기사입력 2014.10.13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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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찬 논설실장

양재찬 논설실장

정치인이 선거 때 가장 많이 쓰는 단어는? '국민'일 것이다. 국민을 위해 봉사하고, 국민의 뜻을 받들겠다고 약속한다. 오로지 국민만 바라보며 한 길을 가겠다고도 한다. 국민이 이만큼 대접받는 때도 없다. 국민을 목적어나 수식어로 삼는 현란한 구호에 당사자인 국민이 현기증을 느낄 정도다.

정치인이 선거를 치를 때나 어떤 계기를 마련코자 할 때 자주 찾는 장소는?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이다. 근래 광주 5ㆍ18 묘역을 찾는 정치인도 적지 않다. 두 곳 모두 나라와 민족, 민주주의를 지키다 목숨을 잃은 국민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정치인으로선 현충원을 찾아 국민의 뜻을 받들겠다고 약속하면 나름 효과적인 선전을 하는 것이리라.

박근혜 대통령도 그랬다. 2012년 11월27일 아침, 18대 대선 선거운동 첫 일정으로 국립현충원을 참배한 뒤 이렇게 말했다.

"정치를 하기 전이나, 또 정치를 하면서 제가 오늘 이 자리에 서기까지 국민 여러분께 정말 많은 은혜를 입었습니다…이번에 그 은혜에 꼭 보답을 하고 싶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하지만 적지 않은 정치인들이 선거에서 이겨 당선되면 행동이 달라진다. 은혜를 갚기는커녕 국민에게 화를 내고 약속과 다른 엉뚱한 처신으로 국민을 실망시키거나 불편하고 힘들게 한다.

세월호 사고로 304명이 목숨을 잃었다. 구조에 나서야 할 국가는 보이지 않았다. 생떼 같은 아이들을 가슴에 묻은 부모들은 울부짖었다. 진상을 알고 싶다고. 사고 당일 대통령이 제대로 보고받고 구조 지시를 했느냐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이른바 '대통령의 7시간' 행적에 대한 논란이 커지자 대통령이 화를 냈다. 국민을 대표하는 대통령에 대한 모독적 발언이 도를 넘었다고 했다. 검찰이 사이버상 허위사실 유포에 엄정 대응하겠다며 칼을 빼들었다. 전담 수사팀이 꾸려지고 인터넷 실시간 모니터링 강화 대책이 나왔다. 대통령의 7시간을 기사화한 외신기자가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다.
사람들이 불안해한다. 누군가와 무심코 나눈 대화가 포착돼 수사선상에 오를 수 있다는 생각에 사이버 망명이 시작됐다. 감청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진 국산 메신저 카카오톡에서 보안성이 강하다는 독일산 텔레그램으로. 대통령 말씀 한 마디에 사이버 검열이 이뤄지고 토종 창조형 정보기술(IT) 기업이 흔들리는 형국이다.

한창 진행 중인 국회 국정감사에도 국민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672개 기관을 20일 동안 감사하겠다는 것 자체가 오만이다. 그나마 야당은 증인 부르라 외치고 여당은 가로막으며 말싸움하다 시간 다 보낸다. 경쟁적으로 호통치고 군기를 잡다가 취재 카메라가 떠나면 이내 흐물흐물해진다. 정치인의 갑(甲)질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 어느 야당 의원은 세월호 유가족과 술을 마신 뒤 대리기사를 불러 한참 기다리게 해놓고 '내가 누군지 알아'하며 시비를 벌여 싸움의 빌미를 제공하고선 모르는 일이라고 발뺌했다.

정치권의 개헌론도 대통령과 국회가 서로를 개조 대상으로 여길 뿐 국민은 안중에 없다. 대통령은 국가 역량을 분산시켜 경제의 블랙홀을 유발한다며 반대한다. 국회는 대통령 권한을 축소하는 분권형 대통령제에 집중하면서 국회 권한을 축소하는 양원제 개헌안에는 소홀하다. 정작 중요한 국민의 기본권 강화를 외치는 정치세력은 없다.

국민주권 사상과 헌법 제1조2항(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을 거론하지 않아도 국민이 국가의 주인임은 상식이다. 대통령 임기는 이제 3분의 1이 지났다. 19대 국회의원 임기도 1년 반이 남았다. 지금부터라도 선거 때, 현충원 참배 길의 약속, 초심으로 돌아가라. 국민 덕분에 그 자리도 있는 것이다. '국민의 은혜'는 선거 때 잠시 부르고 마는 레퍼토리가 아니다.


양재찬 논설실장 jaya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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