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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찬 칼럼]대한민국에서 국민으로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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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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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을 만나면 너무 답답하다고 한다. 자꾸 우울해진다고도 한다. "우리가 이 정도밖에 안 되냐"는 생각에 부끄럽다고들 한다. 대한민국 국민으로 산다는 것이 힘들다는 말도 나온다.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는데 책임지는 지도자도 보이지 않아서다.

세월호 사고가 발생한 지 다섯 달째. 정치권은 진상 규명은커녕 특별법 공방으로 날을 새고, 정쟁거리화해 떠도는 소문은 유가족 가슴을 후벼 판다. 투자와 내수 부진으로 기진맥진한 경제를 자극하려는 정부의 경기부양 정책은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잇따른 병영 사고로 자식 군대 보내기가 두려운데도 대책은 옴부즈맨 도입과 군 사법제도 개혁 등 핵심에서 비켜나 겉돌고 있다.
국민을 절망시키는 이런 일의 근저에 몰락일로의 한국 정치가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고개를 숙였던 박근혜 대통령과 정치권은 6ㆍ4 지방선거와 7ㆍ30 재보궐선거 이후 돌변했다. 선거에서 이긴 새누리당과 집권세력은 면죄부라도 받은 듯 득의양양해졌다. 청와대 앞에서 유가족들이 열하루째 노숙 농성 중인데도 대통령은 말이 없다. 태릉선수촌을 찾아 아시안게임 출전 선수들을 격려하고 뮤지컬을 관람하면서도 농성 유가족에는 눈길을 주지 않았다.

정부도 '세월호 특별법은 국회의 일'이라는 청와대 입장에 보조를 맞췄다. 경제부총리(8월26일)에 이어 총리(29일)가 잇따라 장관들을 대동하고 나와 민생법안 처리를 촉구하는 담화를 발표했다. 세월호 사고 당시 미숙한 대응이나 이후 정치ㆍ사회적 갈등으로 인한 국력 낭비에 대한 언급은 빠진 일방적 메시지 전달이었다. 실종자 304명을 단 한 명도 구하지 못한 정부의 책임자로선 염치없다.

두 차례 선거에서 진 새정치민주연합은 지도부가 사퇴하고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렸으나 우왕좌왕했다. 여당 원내대표와 두 차례 특별법안에 합의하고도 유가족 설득은커녕 당내 추인도 못 받았다. 지도부가 장외투쟁에 나서고 대선후보가 단식 농성에 들어간 한편에선 일부 의원들이 장외투쟁을 반대하는 성명을 냈다. 정치력이 부족한 무능 야당으로선 유가족과 협상 상대에게 배척당한 채 새누리당과 유가족의 협상을 지켜보는 처지로 내몰렸다.
유가족이 사고의 진상 규명을 위한 법을 만드는 정치 협상을 직접 해야 하는 현실은 한국 정치의 실종 사건에 다름 아니다. 게다가 새누리당은 유민 아빠가 46일 만에 단식농성을 중단하자 '새누리당이 유가족들과 두 차례 만난 성과'라고 자화자찬했다가 유가족으로부터 '부끄러운 줄 알라'는 일침을 맞았다.

세월호 이전과 이후가 다른 사회를 건설하겠다지만 현실은 달라진 게 없다. 7명의 목숨을 앗아간 창원 버스사고는 세월호 참사의 복사판이다. 집중호우로 산사태가 난 도로에 다다른 운전기사가 버스회사에 전화로 어찌할지 물었다. 보고받은 사실이 없다고 잡아떼던 회사는 경찰 조사에서 우회 지시를 내렸음을 시인했다. 회사 측이 비가 멈출 때까지 안전지대에서 대기토록 했거나 경찰의 교통통제가 제대로 이뤄졌다면 참사는 면했을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인 게 더 이상 힘들지 않도록 실종된 정치부터 복원하라. 정치를 되살려야 경제도 살아나고 사회도 안정된다. 법안 처리가 제로(0)인 식물국회 상황에선 정부가 아무리 용을 써도 효과를 보기 어렵다. 대통령부터 달라져야 한다. 갈등 현안을 외면하며 뒤로 숨지 말고 생각이 다른 이들과도 소통하며 국민의 마음을 헤아려라. 새누리당은 민생 현안의 1차적 책임 정당다운 모습을 보여라. 새정치연합은 반의회주의적 '운동권 체질'에서 벗어나 정책 정당으로 거듭나라. 한국 정치를 살릴 골든타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오늘 문을 여는 정기국회마저 허송할 텐가. 일주일 뒤면 추석이다. 민심은 무섭다. 추석 차례상은 정치권의 변화를 갈망한다.



양재찬 논설실장 jaya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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