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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명 칼럼]정치인펀드 이대로 방치해도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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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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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ㆍ4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인펀드' 출시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자기 이름을 내세운 '○○○펀드'부터 각자 나름의 메시지를 담은 '어깨동무펀드' '콩나물펀드' '약속펀드' '진짜사나이펀드'에 이르기까지 작명 방식도 다양하다. 출시한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완판했다'고 발표하는 등 세과시용으로 이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미 수십개가 등장했고,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선거펀드'로도 불리는 정치인펀드의 원조는 2010년에 출시된 '유시민펀드'다. 당시 경기도지사 선거에 나선 유시민씨는 펀드를 통해 5300명의 투자자에게서 40억여원의 선거자금을 모아 기탁금 내는 데 쓰고 선거비용으로도 썼다. 2012년 대통령선거에서는 박근혜ㆍ문재인ㆍ안철수ㆍ이정희 등 4대 대통령후보가 모두 정치인펀드를 출시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정치인펀드는 첫선을 보인 지 불과 4년 만에 선거문화의 한 요소로 당당하게 자리 잡았다.
이렇게 된 데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수수방관'이 촉매가 됐다. 유시민펀드의 적법성에 대한 유권해석 질의에 대해 선관위는 '금융상품이 아닌 개인 간 금전대차이므로 적정한 이자만 지급된다면 관련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취지로 답변했다. 이후 선관위는 정치인펀드가 선거법이나 정치자금법의 규율대상이 아니므로 관여하지 않는다는 태도를 유지했다. 다행히 그동안 정치인펀드로 인해 큰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것이 깨끗한 정치자금 조달방법이 된다는 측면이 선거에 나선 정치인들에 의해 강조된다. 펀드 이름에 '클린'이라는 말이 많이 들어가는 것도 그래서다.

그러나 이대로 방치해도 되는지 의문이다. 악용되거나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선관위는 개인 간 금전대차라고 했지만, 펀드 개설자인 특정 정치인이 불특정 다수 대중을 상대로 포괄적 유치활동을 벌인다는 점에서 그렇게만 볼 일은 아니다. 유사 수신행위의 성격이 전혀 없지는 않으므로 가입자(투자자)의 피해 방지 차원에서 금융감독 당국이 개입할 여지가 있다.

더 큰 문제는 정치인펀드가 '검은 정치자금의 세탁 경로'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정치인펀드는 거의 전부 다 투자금액의 하한만 정하고 상한은 두지 않는다. 거액의 정치자금이 들어올 길을 터놓는 것이다.
예컨대 당선이 유력한 후보에게 이권청탁을 하려는 사업자라면 눈에 띌 정도의 거액을 집어넣고 '안 갚아도 된다'는 뜻을 전달하거나 일방적으로 채권포기를 할 수 있다. 이 경우 정치인펀드가 사전 뇌물수수 통로가 된다. 당사자가 문제 삼지 않는 한 이런 뇌물수수는 적발되지 않는다. 금융감독 당국과 선관위 둘 다 관여하지 않을 뿐 아니라 펀드 개설자가 선거 후 정산 결과를 공개할 의무도 없고, 공개한다 해도 그 진위는 개설자와 회계처리 담당자 말고는 누구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정치인펀드를 선거 과정의 한 요소로 계속 인정하려면 이제는 이에 대한 적절한 기준과 규제의 틀을 마련해야 한다. 법으로 개설 시기와 정산 절차상 지켜야 할 사항을 규정하고, 정산 내역의 투명한 공개를 의무화해야 한다. 1인당 가입금액에 상한선을 설정할 필요도 있다. 약속대로 원금과 이자를 갚지 않는 후보자에 대해서는 '득표율 15% 이상 시 전액, 10~15% 시 절반'으로 규정된 선거비용 보전금을 감액하거나 지급하지 않는 방법도 있다. 아울러 정치인펀드를 사전 선거운동 수단으로 삼는 행위를 금지해야 한다.

요컨대 이제는 정치인펀드도 선거법과 정치자금법의 틀 안에서 규율해야 한다고 본다. 벽보 한 장, 밥값 한 건도 살피는 선관위가 선거운동 수단으로 활용되는 정치인펀드에 대해 계속 오불관언의 태도를 취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이주명 논설위원 cml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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