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펀드'로도 불리는 정치인펀드의 원조는 2010년에 출시된 '유시민펀드'다. 당시 경기도지사 선거에 나선 유시민씨는 펀드를 통해 5300명의 투자자에게서 40억여원의 선거자금을 모아 기탁금 내는 데 쓰고 선거비용으로도 썼다. 2012년 대통령선거에서는 박근혜ㆍ문재인ㆍ안철수ㆍ이정희 등 4대 대통령후보가 모두 정치인펀드를 출시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정치인펀드는 첫선을 보인 지 불과 4년 만에 선거문화의 한 요소로 당당하게 자리 잡았다.
그러나 이대로 방치해도 되는지 의문이다. 악용되거나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선관위는 개인 간 금전대차라고 했지만, 펀드 개설자인 특정 정치인이 불특정 다수 대중을 상대로 포괄적 유치활동을 벌인다는 점에서 그렇게만 볼 일은 아니다. 유사 수신행위의 성격이 전혀 없지는 않으므로 가입자(투자자)의 피해 방지 차원에서 금융감독 당국이 개입할 여지가 있다.
더 큰 문제는 정치인펀드가 '검은 정치자금의 세탁 경로'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정치인펀드는 거의 전부 다 투자금액의 하한만 정하고 상한은 두지 않는다. 거액의 정치자금이 들어올 길을 터놓는 것이다.
정치인펀드를 선거 과정의 한 요소로 계속 인정하려면 이제는 이에 대한 적절한 기준과 규제의 틀을 마련해야 한다. 법으로 개설 시기와 정산 절차상 지켜야 할 사항을 규정하고, 정산 내역의 투명한 공개를 의무화해야 한다. 1인당 가입금액에 상한선을 설정할 필요도 있다. 약속대로 원금과 이자를 갚지 않는 후보자에 대해서는 '득표율 15% 이상 시 전액, 10~15% 시 절반'으로 규정된 선거비용 보전금을 감액하거나 지급하지 않는 방법도 있다. 아울러 정치인펀드를 사전 선거운동 수단으로 삼는 행위를 금지해야 한다.
요컨대 이제는 정치인펀드도 선거법과 정치자금법의 틀 안에서 규율해야 한다고 본다. 벽보 한 장, 밥값 한 건도 살피는 선관위가 선거운동 수단으로 활용되는 정치인펀드에 대해 계속 오불관언의 태도를 취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이주명 논설위원 cml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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