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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찬 칼럼]응답하라, 한국호!

최종수정 2014.04.28 11:33 기사입력 2014.04.28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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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찬 논설실장

양재찬 논설실장

"기상 여건을 감안하지 않은 무리한 운행, 선장의 자질 부족, 무책임한 승객 안전 조치, 당국의 형식적인 관리감독, 늑장 출동으로 시체 인양에 만족해야 했던 구멍 뚫린 해난 구조체계, 후진국에서나 있을 수 있는 어처구니없는 일."

세월호 참사를 일컫는 게 아니다. 1993년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의 원인과 구조 상황을 국가기록원이 정리한 것이다. 세월호 참사와 판박이다. 굳이 다른 점을 찾자면 서해훼리호 선장은 배 안에서 죽음을 맞은 반면 세월호 선장은 승객을 버리고 가장 먼저 탈출했다는 것이다. 다시 국가기록원 기록, 유사 사고 방지대책을 보면 입이 더 벌어진다.

"철저한 승선인원 확인 등 안전대책 강구, 구조수색 활동에 필요한 장비 확보, 수중 작업 가능한 전문인력 양성."

21년 전 292명의 목숨을 앗아간 참사를 겪고도 우린 변하지 않았다. 3배 넘게 불어난 1인당 국민소득과 기술수준을 비교하면 안전의식은 오히려 퇴보했다. 대형 사고가 터질 때마다 '인재(人災)' '관재(官災)' 꼬리표가 붙는다.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한탄과 슬픔에 빠진다.

세월호 여객 명부는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정확한 탑승객 수와 구조 인원을 파악하지 못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TV 뉴스특보에 의존했다. 해군은 1590억원을 들여 만든 한국 최초 구난 함정을 장비 점검 미흡으로 투입하지 못했다. 해경은 민간 잠수사들과 투입 장비 및 지휘체계를 놓고 밥그릇 싸움을 벌였다. 실종자 수색은 엉뚱하게 사고 선사와 계약한 민간업체가 주도했다. 그나마 '인명 구조' 전문이 아닌 '선체 인양' 전문 업체라니.
결과는 참담하다. 실종자 수색 13일째, 애타게 기다리는 생환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실종자 구조 0명'의 진기록은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공약한 박근혜정부의 침몰을 의미한다. 오죽하면 적지 않은 안산 단원고교 학생들이 '못 구하는 게 아니고 안 구한다고 생각한다'고 심리치료 의료진이 전할까.

지구촌의 관심은 말레이시아 여객기 실종에서 한국 여객선 침몰 사고로 옮아갔다. 조선 수주액 세계 1위 국가, 정보기술(IT) 강국, 한류의 나라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후진적 사고에 놀랐다. 해외 언론들이 잇따라 한국을 평가절하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몸살까지 앓으며 해외를 순방해 쌓은 '선진 한국' 이미지가 한순간에 망가졌다.

박 대통령은 25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회담에서 "국민이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새 대한민국은 더 이상 앞길 창창한 젊은이들을 졸지에 잃고 가슴에 묻지 않아야 한다. 전 국민의 행복까진 몰라도 안전은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한다. 다급해진 정부가 '국가개조'를 외친다.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져서, 코앞인 지방선거에 대비하기 위한 국면전환용에 그쳐선 안 된다.

사회 곳곳에서 SOS 신호가 울려댄다. 정부는 '안전 한국'을 최우선 국정목표로 삼아라. 경제혁신 3개년계획에 버금가는 사회안전 3개년계획이 절실하다. 경제가 성장하고 소득이 높아져도 안전을 위협받는 사회의 국민은 불행하다. 국가기록원에 처박아둔 사고백서를 복기하며 교훈을 실행하라. 빈부격차와 비정규직 양산 등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요인도 줄여나가야 한다. 무사안일과 보신으로 오염된 관료주의가 국가발전의 짐이 되지 않도록 '관피아(관료+마피아)' 문화와 낙하산 인사를 척결하라.

기업과 사회도 적당주의와 빨리빨리 문화, 과도한 성과주의를 떨쳐내야 한다. 후진적 사고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거기에 수반되는 어느 정도의 불편과 부담도 감내해야 한다. 출퇴근길에 마주치는 지하철 에스컬레이터, 두 줄로 서서 가는 이들에게 눈총을 주며 뛰어 오르내려선 '안전 한국'에의 길은 멀다. 응답하라, 위기의 한국호!


양재찬 논설실장 jaya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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