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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찬 칼럼]그래서 지금 행복들 하십니까?

최종수정 2014.02.03 11:13 기사입력 2014.02.03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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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찬 논설실장

양재찬 논설실장

친구 딸 결혼식에 다녀왔다. 30여분의 예식 중 짧지만 가장 뜻깊은 순서는 혼인서약이다. "어떠한 경우라도 항시 사랑하고 존중하며 어른을 공경하고 진실한 남편과 아내로서의 도리를 다할 것을 맹세합니까?" 신랑의 대답이 씩씩했다. 신부도 못지않았다. 주례가 "이렇게 크게 대답한 신부는 처음"이라고 치켜세웠다.

사적 관계에서 혼인서약이 의미를 지닌다면 공적 관계에선 대통령과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 등 선출직 공무원의 취임선서가 의미심장하다. 혼인서약이야 결혼상대와 가족, 친지, 하객 등 불과 몇백명 앞에서 하지만 취임선서는 적게는 수만명 지역 주민, 많게는 5000만 국민과의 약속이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선서한 지 1년이 돼 간다. 선서에 이은 취임사에서 많이 언급한 단어는 '국민'(57회), '행복' '경제'(각 20회). 국민행복 시대를 선언하며 여러 가지를 약속했지만 제대로 이뤄진 게 없다. 65세 이상 노인 모두에게 월 20만원씩 준다던 기초연금은 소득하위 70%에 차등지급하는 것으로 축소됐다. 암 등 4대 중증질환에 대한 100% 국가 보장, 원하는 초등학생 전부에게 무료로 제공한다던 방과후 돌봄교실, 반값등록금 등 '무상' '100%' '반값' 보장 공약들이 줄줄이 후퇴했다. '국민과의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던 대통령의 장담이 무색해졌다.

대선 때 그리 강조하던 경제민주화는 정부가 출범한 지 얼마 안 돼 경제활성화 구호에 묻혔다. 대통령이 중소기업 중심 경제를 외치며 현장을 찾았지만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은 달라진 게 없다고 푸념한다. '행복'이란 단어로 포장한 공약도 시행 단계에서 변질됐다. 이명박표 보금자리주택을 대체한 박근혜표 행복주택은 건립 후보지역 주민의 반발에 부닥쳐 절반으로 축소됐다. 저소득층의 과중한 채무 부담을 덜어준다던 국민행복기금도 형평성과 도덕적 해이 논란으로 좌표를 잃었다.
넉 달 남은 지방선거를 앞두고도 벌써 공약이 춤춘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설 연휴 직전 성북ㆍ강북ㆍ도봉ㆍ노원 등 동북 4개구의 개발계획 '행복4구 플랜'을 발표했다. 박원순표 '행복 포장' 공약이다. 이 지역을 '신경제 중심지'로 육성해 일자리 8만개를 창출하겠다는데 구체적 실천 전략과 예산 확보 방안이 없다. 수서발 KTX 노선도 이쪽으로 연장한다는데, 이는 서울시가 아닌 정부가 결정할 일이다. 오세훈 전 시장도 지방선거를 앞둔 2009년 '동북권 르네상스 프로젝트'를 내놓았지만 흐지부지됐다.

전국 244개 지자체 가운데 재정자립도가 50%도 안 되는 곳이 216개다. 중앙정부가 부족한 예산을 대주지 않으면 언제 부도날지 모른다. 그래도 적지 않은 단체장 후보들은 선거일이 임박할수록 장밋빛 청사진을 내놓을 것이다.

신랑신부의 혼인서약이든, 대통령과 단체장의 선거공약과 취임선서든 지켜져야 의미가 있다. 후보들은 실현 가능한 참공약으로 경쟁해야 한다. 유권자는 재원도 없이 '무상' '반값'을 보장하거나 '행복' '르네상스' 등 그럴싸한 말로 포장한 헛공약을 가려내야 한다.

'선거 때 실체가 없는 달콤한 공약에 넘어가거나 지연ㆍ학연에 얽혀 표를 던진 유권자 여러분, 그래서 지금 행복들 하십니까?' 행복은커녕 안녕도 못하다면 다음 선거부턴 눈을 부릅뜨고 소중한 주권을 행사해야 한다. '우리가 남이가' 하며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표를 찍지 말고, '우리는 남이다' 정신으로 이모저모 따져 엉터리 후보를 솎아내야 후회하지 않는다.


양재찬 논설실장 jaya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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