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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詩]김화순의 '비문증(飛蚊症)' 중에서

최종수정 2013.12.24 10:57 기사입력 2013.12.24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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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새로운 능력이 생겼다/내가 스마트 기기처럼 자동 업그레이드 되었다/'눈속에 넣어도 안아프다는' 말을 비로소 실감했다//한동안 머리 무겁고 시야 흐릿하더니/가슴속에서 수런거리던 불온한 말들이,/발화되지 못한 고집들이, 첩첩 눌려있던 욕망이/애벌레, 번데기를 거쳐 우화했나/날개 달린 글자가 오른쪽 눈앞에서 날아다닌다/처음엔 .,':!"〈*/ - 같은 작은 부호로 파닥거리더니/이제는 자모가 엉겨 붙어 어엿한 글자날벌레가 되었다/나너길비섬꽃달밥낮봄삶산숨글강꿈춤섬눈빛새헐(……)

김화순의 '비문증(飛蚊症)' 중에서

■ 낙천적이고 기발한 감관을 지닌 김화순 시인은, 닥쳐온 비문증을 데리고 한바탕 논다. 그녀는 이것이 모기 따위가 아니라, 외계에서 접수되는 암호 체계의 일부라고 주장한다. 중요한 미션을 실천해야할 그녀이기에, 어느 날 밤 자신의 안구 주변이 자동으로 업그레이드되어 문자들이 날아오기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아니, 원래 자신 속에 들어있던 문자의 애벌레가 오랜 시간 잠복하며 때를 기다렸다가 마침내 우화(羽化)한 것일지 모른다는 짐작도 곁들인다. 뭐든 좋다. 이런 상상 속에는, 인생 굽이의 비감에 시달리는 궁상맞은 한숨 따위는 없다. 스물이 신의 뜻이고 마흔이 하늘의 점지라면 쉰 또한 그 품격있는 스케줄에서 벗어나 있지 않을 것이다. 눈 속에 모기 한 마리를 상주시키는 조치 또한, 굳이 인간을 괴롭혀 긴장을 하게 만들고자 하는 초보적인 처방 같은 것으로 읽을 일이 뭐 있는가. 누군가 통찰했듯, 모기 외계어를 접수할 만한 연륜과 학식을 쌓을 수도 있는 시절. 불편함을 인생 속에 허용하고 살아갈 줄 아는 일은 쉰이란 나이의 핵심어이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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