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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詩]이성복의 '잔치국수 하나 해주세요'

최종수정 2013.12.13 11:31 기사입력 2013.12.13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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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담장 너머로 "복분식 아줌마, 잔치 국수 하나 해주세요" 그러면 "삼십 분 있다가 와요" 하기도 하고 "오늘 바빠서 안 돼요" 하기도 하고, 그러면 나는 할매집 도시락을 시켜 먹거나, 횡단보도 두 번 건너 불교회관 옆 밀밭식당에 아구탕 먹으러 간다. 내 식욕과 복분식 아줌마 일손이 일치하지 않을 때, 재빨리 내 식욕을 바꾸는 것이다. 아니 식욕을 바꾼다기 보다 , 벌써 다른 식욕이 찾아오는 것이다. 내가 알던 여자들도 대개는 그렇게 왔다. 하루 이틀 지나면 그때는, 무얼 먹고 싶었는지 생각도 안 나는 세월에서.

이성복의 '잔치국수 하나 해주세요'

■ 잔치국수는 떠들썩한 이름과는 다르게 소박한 음식이다. 잔칫집에서 과객들이 후루룩 마시듯 먹고갈 수 있는 것으로 제공된 국수였기에 그런 이름이 붙었을 것이다.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서운하지 않게 평등하게 대접할 수 있는 저 국수의 힘으로, 이 사회는 오래전부터 공동체의 끈끈함을 유지해왔는지도 모른다. 가늘고 부드러운 면발이, 별 양념이 없이 멸치를 우린 것으로 간간삼삼함을 유지하는 국물에 담긴 이 음식은, 어느 때고 입맛이 돌게하는 이상한 매력이 있다. 아마도 어린 시절 입에 밴 맛들이 기억의 화학작용을 일으켜, 향수처럼 돋아나게된 것이리라. 잔치국수 하나면 술병으로 쓰린 속이나, 계절타는 입맛도 다 사라진다. 종로 2가의 좁은 골목에서 발견한 잔치국수 집은 잔치국수처럼 수더분한 아낙 둘이서 운영하는 식당이다. 그곳을 나는,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남은 국물을 아쉽게 들이키노라면, 삶이 이렇게 바닥까지 간절해지는지, 저쪽에서 퇴짜놓은 연애의 종말과도 같이 서운하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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