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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저詩]황지우의 '똥개의 아름다운 갈색 눈동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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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집을 나서는데 골목 어귀에서 우연히, 똥개 한 마리와 눈이 마주쳤다. 그 똥개의 눈이 하두 맑고 슬퍼서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고 그놈을 눈깔이 뚫어져라 들여다보았다. 아 그랬더니 그놈도 고개를 갸우뚱하고 나를, 눈깔이 뚫어져라 바라본다. 우리나라 봄하늘같이 보도랍고 묽은, 똥개의 그 천진난만 - 천진무구한 각막→수정체→망막 속에, 노란 봉투 하나 들고 서 있는, LONDON FOG표 ポリエステル(폴리에스테르) 100% 바바리 차림의, 나의 전신이 나의 전모가, 나의 전생애가 들어가 있다. (……) 그 똥개, 쓰레기통 뒤지러 가고 나, 버스타러 핑 가고, 전봇대에 ←전씨상가, 시온 장의사, 전화 999-1984.

황지우의 '똥개의 아름다운 갈색 눈동자' 중에서

■ 삶에는 이런 일이 있다. 늘 보던 개이지만, 우연히 눈이 딱 마주쳐 잠깐 서로를 깊이 들여다보는 때. 개의 눈 속에 각막과 수정체와 망막이 맑은 원을 그리며 중심으로 들어간다. 그 중심에는 봉투를 들고 바바리를 입은 내 전신이 들어가 있다. 내 각막과 수정체와 망막의 파문에는 개 한 마리가 들어앉아 있으리라. 응시(凝視)는, 가만히 생각해보면 놀랍고 신비하다. 한 생애를 서로의 눈 속에 넣고 바라보는 일. 서로의 전모를 들키는 일. 개와 사람이 서로에게 이토록 유일한 대상으로 얽혀드니, 생의 바깥에서 우리가 만난 것 같기도 하다는, 인연설(因緣說)이 감돈다. 하지만 잠깐일 뿐, 미묘한 기억 따윈 훅 하니 사라지고 개는 개의 길로 나는 나의 길로 간다. 이런 겉도는 생을 살다가, 전봇대에 붙은 상가(喪家)의 주인공이 되어 사라질 것이다. 똥개는 내게 무엇이었나. 그 짧고 특별한 사랑은 내게 무엇이었나.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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