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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딸깍발이]"폭탄주라니..나도 할 말이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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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 국회의원 한사람이 폭탄주로 곤혹을 치루는 중이다. 그걸 보자니 나도 폭탄주에 얽힌 추억이 떠오른다.

몇년전 가을녘 개성공단엘 간 적 있다. 한국토지공사 초청으로 공단내 중심도로 완공식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였다. 금역에 첫발을 디디러가면서 몹시 설레고 흥분됐다. 날씨는 맑았다. 그날 광화문 인근에서 8시경 차에 오른 우리 일행은 신촌을 지나 자유로를 통해 판문점으로 향했다.채 한시간도 안 되는 거리였다.
지금 하려는 얘기가 폭탄주에 얽힌 것이니 통관 절차며 행사며 공단 풍경은 건너 뛰자. 아무튼 설레었다. 공단내에서의 경험 하나 읊고 가자면 여성들에게 눈길이 많이 갔다. (ㅋㅋ) 현대아산의 개성공단 관리사무소에 들렀을 때 공단 조성과정을 설명하던 젊은 여성이 특별히 기억 난다. 매화꽃무늬가 아담하게 그려진 옥색 한복차림의 북한 여성은 꾀꼬리같은 목소리로 운율을 타듯 말해 우리 일행으로부터 큰 환호를 받았다. 참 예뻤다. 검고 다소 마른듯한 북한 남자들과는 달리 여성들은 달덩이처럼 고왔다.

"안녕하십네까아..반갑습네다."
모든 말에도 운율이 묻어났다. 우린 만나는 사람마다 북한 말투로 인사를 건네느라 신이 났다. 그리고 우리의 인사를 받은 여성들은 얼굴을 붉히는게 재미 있었다. 왠지 순수하고 때묻지 않은 인상이었다. 여정은 곧 오찬장인 개성시내 자남산호텔로 이어졌다.

호텔로 가는 동안 개성시내 한복판을 돌아봤다. 사람들이 천천히 느리게 걷거나 자전거에 배추를 실고 어디론가 움직였다. 그 느릿함이란, 서울의 거치른 풍경에 찌든 내겐 아주 낯설은 것이었다. 시내를 지나 자남산호텔에 들어서기전 선죽교를 돌아봤다. 고려말 정몽주가 이방원의 부하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일화가 담긴 곳이다.
호텔과 선죽교는 서로 마주보고 있다. 그 사이 도로가 가로질러 있다. 호텔 입구쪽으로는 작은 오르막이 형성돼 있고 오르막 양 옆으로는 향나무와 소나무가 운치있게 자리 잡았다. 헌데 오르막이 시작되는 호텔 입구에 유리 진열장, 술병가득한 좌판을 펼치고 젊은 여성이 장사하고 있었다.

나는 선죽교을 건너 일행에 앞서 먼저 좌판에 도달했다. 젊은 여성을 보자 말을 걸고 싶어졌다. "안녕하십네까 ? 남쪽에서 왔수다" 북한 말투로 인사를 건넸다. 역시 얼굴만 붉히며 수줍어했다. 더 말을 걸어보려는데 이 여성은 먼 발치의 일행에 눈길이 빼앗겨 있었다. "저 사람들이 몰려와 물건을 사줘야하는데..."하는 눈치였다.

그러니 혼자 배회하듯 다가온 내게 그녀는 안중에도 없었다.
"내가 거기 있는 술 다 팔아줄까요 ?" 그녀의 눈에 의심이 가득찼다.

"종이컵을 진열대 위에 있는대로 올려놓고 용성맥주와 들쑥술 하나만 주슈" 그녀가 망설였다. 내가 재촉했다. 마지 못해 컵을 꺼내놓았다. 그러자 난 들쑥술을 건네받아 컵 바닥에 약간 붇고 다시 맥주를 부었다. 그저 흔한 폭탄주 제조법대로 술을 말았다.

"접대원동무 폭탄주 알아요 ?" 대답 대신 고개를 저었다.

"자 ! 이게 폭탄주요. 나를 따라 외쳐봐요."

"폭탄주 있어요" 내가 외쳤다. 그녀는 내가 무슨 일을 벌이자고 하는 짓인가 여전히 의혹에 차 있을 뿐 멈칫 댔다.

"아하 ! 따라하라니까. 폭탄주 있어요."
내가 큰 소리로 외쳤다. 이번엔 그녀가 작은 목소리로 따라 했다. 선죽교를 건너던 일행들의 시선이 쏠렸다. 드디어 낚시질에 걸린 것이다.

"다시 ! 큰 소리로..."
그녀가 낭랑한 목소리로 크게 외쳤다. 저만치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오는 발자욱소리가 요란스러워졌다.

"다음부터 남측 사람들이 오면 '폭탄주 있어요'를 외치시오. 그러면 술이 금새 동 날거요"
몰려든 일행들에게 내가 직접 폭탄주를 돌렸다. 좌판이 금새 시끄러워졌다. 처음 꺼내든 술이 곧 사라졌다. 다시 일행 중 한 사람이 폭탄주를 만들겠다고 나섰다. 그렇게 일행은 삽시간에 폭탄주 대여섯잔을 마셨다. 술판이 어지간해지자 몰려든 사람들이 술을 사려고 진열대위로 손을 한꺼번에 뻗었다. 그녀는 혼비백산하는 표정였다.

돈을 헤아리지도 못할 지경였다. 거스름돈도 제대로 건네지 못 했다. "참, 순박하긴...삼십여명 몰렸다고 정신을 못 차리다니." 아마도 그녀는 난생 처음 겪는 일인듯 했다. 기억이 정확치 않지만 남한 손님들에게 판 들쑥술 한병은 일만원 정도였던 같다. 다만 서울의 백화점보다는 아주 낮은 값이었다. 당시 개성공단의 북한 근로자 한달 임금 50달러. 그날 그녀가 판매한 액수는 어림잡아 60만∼70만원쯤 된 것 같다. 공단 근로자 임금으로 치면 반년치다. 진열대의 술이 다 팔리고, 주변이 정돈되고서야 그녀가 미소 지었다. 무척 상기된 표정이었다. 해맑고도 순수했다.

지금도 함께 했던 일행들이 모이는 날 선죽교앞에서의 들쑥술 폭탄주 얘기를 한다. 순박했던 선죽교 여성도 그렇고. 그후 난 개성에 처음 폭탄주를 전래한 사람이 됐다.

"아 ! 글쎄 내가 북한 가서 폭탄주 제조법을 가르쳤더니 이 친구들이 얼마 있다가 핵폭탄을 만들대. (ㅋㅋ) 내가 민족에 큰 죄를 졌어. 그때 폭탄제조법을 가르쳐주지 안 했어야는데...푸하하하...나는 뭐 남북한이 하나로 섞어 빨리 통일하자고 했던건데. 큭!!" 그날을 추억하는 내 농담이 지나치긴 하다.

민족의 운명이 걸린 엄중한 문제를 두고 시시컬렁하게 농담하는 것은 옳치 않다. 하지만 어서 빨리 한반도에 비핵화를 실현하고, 남북이 하나되는 날을 소망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날 선죽교앞에서 만났던 젊은 여성이 지금 폭탄주를 팔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저 우리가 한민족이고 격의 없었던 남측 사람으로 기억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분위기야 어떻든 다소 짖구졌던게 사실이다.

그런 일도 있다. 더 한참 전 중국 심양에 갔다가 그곳 관료들과 오찬을 가진 적 있었다. 그들과의 점심 식사는 무척 길었다. 좀체로 끝나지 않을 것처럼... 식사하는동안 중국관료들은 "건빠이 !!"를 외쳐대는 바람에 우리는 무척이나 힘들었다. 중국술은 향이 강하고 알콜 도수가 높아 단숨에 먹기가 어렵다. 관료들은 술 못하는 우리들을 보면서 아주 신바람이 났다. 관료들중에는 거만한 표정을 짓는 이도 있었다.

"자 ! 이제 우리 식으로 합시다" 난 점원을 불러 맥주와 컵을 시켰다.
폭탄주를 컵마다 가득 채워 그들에게 안겼다. 놀란 표정였다. 그때 껏 심양관료들은 폭탄주를 모르고 있었다.

"원샷 !!" 우리 일행들은 신나서 폭탄주를 털어 부었다. 폭탄주라면 이골난 사람들 아닌가. 중국관료들은 처음 몇잔을 잘 따라오다가 손을 내두르기 시작했다. 드디어 역전의 기회를 잡은 것이다. 우리는 거세게 밀어부쳤다. 돌아가면서 계속 폭탄을 집중 투하했다. 고소했다. 하나둘 중국 관료들이 나가 떨어졌다. 그날 오찬은 무려 세시간이나 이어졌으며 우리의 완벽한 승리로 막 내렸다.

"아, 위대한 태극전사들.마침내 짱깨(?)들을 물려쳤다.만세"

식당을 나와 그들과 헤어진 다음 누군가가 귀엽게 주사부렸다.그런 주사가 더 신났다. 모두들 함께 만세를 불렀다.

폭탄주, 종류도 많다. 태권도주, 회오리주, 월드컵주, 골프주, 금테주, 수류탄주, 소방주, 도민주, 타이타닉주 등등 제조 방법이 사람마다 다르고, 방법도 수백여가지다. 변천을 다 따라가기 어려울 지경이다. 대체로 폭탄주가 유행인 것은 우리들의 회식문화와 관련 있다는 설명이 우세하다. 조직의 단합, 상명하복, 다 함께 먹자는 획일성 등등 여러가지로 설명되긴 한다. 초기의 폭탄주는 맥주와 양주를 섞었지만 지금은 다른 술도 맥주에 다 섞는 듯 하다.

폭탄주는 그 강도에 따라 원자폭탄주, 수소폭탄주, 중성자탄 등이 있고, 마빡주, 충성주 등 회식자리 성격을 규정해주는 폭탄주도 있다. 술이란게 그저 적당히 마시면 큰 탈이 없으련만. 때와 장소를 가려야하는 걸. 어떤 이가 폭탄주 퍼먹고 대국민토론회장에 나서서 혼쭐나고 있으니..."뭐라고 할 말이 없네." ㅋ




이규성 기자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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