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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딸깍발이]우리는 수천년동안 이민족과 교배했다

최종수정 2012.05.29 15:54 기사입력 2011.07.28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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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
[남산딸깍발이]우리는 수천년동안 이민족과 교배했다
노르웨이의 극우테러와 관련, 다문화사회로 가는 우리에게도 커다란 경종이 울렸다고들 호들갑이다. 요즘 다문화가정, 다문화사회..다문화라는 말 참으로 쉽게 쓴다. 그런데 그게 절대 문화적 차이를 설명한 용어는 아니다. 본질적으로는 혈통 따지는 비열한 말에 지나지 않다....다문화라는 용어가 단연코 차별을 전제로 한 것이다.

'튀기'니 '짬뽕'이니 하며 조롱하던 말의 변종이 '다문화'다. 지금 우리에겐 100만명 (결혼이주 21만명, 노동자 70만명)의 외국인들이 섞여 있다. 즉 다문화는 이들과 우리 韓族 사이의 구분을 칭하는 말이다. 거꾸로 말하자면 우리는 그동안 단일문화의 단일민족이었단 말이 된다. 정말 그런가 ? 단일민족이라는 자부심은 사실 허구다.

스키타이에서 동방으로 이주한 쥬신계열의 예맥족은 지금 존재하지 않는다. 고조선, 고구려, 발해가 다민족국가였으며, 고려 또한 이민족의 귀화정책을 통해 성장한 국가다. 쌍기와 화산 이씨, 덕수 장씨 등 수많은 귀화인들이 그를 증명한다. 조선조도 여진 등 이민족을 편입, 동화시킨 전례가 수두룩하다.

따라서 여러 민족의 혈통이 모여 지금에 이르렀다. 성씨 분포에 있어서도 우리나라 275개 중 130여개가 귀화성씨다.그 중에서 여진계, 위구르계, 회화계, 일본계, 베트남계 등 오리엔탈계는 다 포함돼 있다. 유전 형질 상으로도 60% 북방계열과 40%의 남방계열이 혼재돼 있으며 첨단적인 유전자 검사로도 정체불명의 DNA가 18.5%나 된다.

헌데 우리는 단일민족으로 여기며 '한 핏줄' 인식이 수천년을 지배해 왔다. 엄격히 말해 단일민족이 아니라 '단일성 민족'이다. 우리는 타민족과 수천년동안 교배해왔다. 그런 가운데서도 강렬한 융해가 이뤄진 비밀은 '우리'라는 거대한 용광로에 있다. 중국처럼 수천년 '중화'의 이름으로 이민족의 역사 기록을 말살한 역사공정(工程)을 쓰지도 않고 단일성을 확보한데는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융성한 민족에 내재된 비밀도 타민족과의 교배에 있었던 사실은 수많은 역사가 증명한다. 이민족을 포용하고, 이들과의 다양성을 이룬 로마의 역사가 그렇다. 몽고의 성공적인 세계경영전략 또한 미개척지역을 향한 블루오션 전략 때문이 아니다. 그건 피정복지에서 동원한 고급 인력, 즉 교배덕분이다. 포용과 우대로 만든 결과다. 로마와 몽고의 발전 이면에 도사린 비밀은 오늘날 세계 국가 '미국'에도 적용된다.

이민정책을 통해 세계의 두뇌들을 받아들인데 따른 것이다. 만약 어떤 이유로 미국이 몰락한다면 아마도 그것은 이민법을 강화하고, 이민자들을 박해하면서 이뤄질 것이 자명하다. 앞으로 수십세대가 지나기전에 인간 게놈지도상의 우리 유전인자는 지구촌의 피가 다 혼재된 '세계族'으로 변모할 것이다. 수십세대 후 이런 세계족이 분열과 갈등으로 나아갈 지는 알 수 없다.

다문화가정의 탄생은 지난 90년대 초 급격한 도시화로 결혼하지 못한 농촌총각이 중국 연변, 베트남, 필리핀, 우즈벡 등 저개발국가의 처녀들을 맞이한데서 비롯된다.여기에 일자리를 찾아 유입된 외국인 노동자들도 포함한다. 이들은 여기서 다문화라는 이름의 또다른 족속으로 산다. 그들의 자녀가 한글을 배우고, 같은 말을 쓰며, 교육받고, 세금 내고, 군대 가지만 그들은 영영 '다문화족'의 굴레를 천형처럼 달고 살아야한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둥지를 틀고 생활하다보니 문화적 충돌도 생길 수 있다. 실제로 생긴다. 사실 들여다보면 문화적 충돌이란게 언어장벽, 생활의 불편, 직업 차별, 임금과 노동시간 차등 등으로 이해된다. 사회체제 흡수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다만 다문화라고 굳이 호들갑을 떠는 것이 더 차별을 부풀릴 수 있다. 다문화라는 용어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꼭 그들과 다르다고 다문화가정 어쩌구 떠버리는 것 자체가 역차별일 수 있으니 말이다. 따라서 다문화라는 말속에 숨은 차별의식은 없는지 돌아볼 시간이다. 당장 버리면 더욱 좋고. !!!

여기서 사족 같지만 문화간 교배에 실패한 프랑스 사회를 들여다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 싶다.

2005년 프랑스 파리 외곽 이민자 밀집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3주간에 걸쳐 대규모 폭동사태가 벌어졌다. 아랍ㆍ아프리카 출신 이민자 후손들의 실업과 차별 등 쌓였던 불만이 폭발하면서 생겨난 사태였다. 파리 주변은 온통 시위대가 불태운 연기로 가득차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2007년 또 같은 사태가 발생했다. 다른 것이 있다면 과거와 달리 시위대가 경찰에 총기를 사용했다는 점이다. 소요는 파리 북쪽 20㎞에 있는 빌리에르벨에서 미등록 오토바이를 타고 최고 속력으로 달리던 10대 두 명이 순찰차와 부딪혀 숨지면서 벌어졌다.

사고 뒤 현장으로 몰려든 10대 청소년 100여명이 경찰의 사고현장 방치를 항의하면서시위를 벌였고, 이어 시위는 인근 다섯 지역으로 급속히 확산됐다. 시위대는 화염병 등을 던지며 순찰차 등 차량 60여대를 비롯, 주유소ㆍ경찰서ㆍ학교 등 10곳의 건물에 불 질렀다.

프랑스 사회는 다인종국가다. 19세기 이후 유럽, 아랍, 아프리카 등의 다양한 민족들이 프랑스에 유입됐다.현재 프랑스 국민 중 약 4분의 1은 적어도 부모 혹은 조부모 중의 한 명이 외국인이다. 간헐적으로 인종주의나 외국인에 대한 혐오가 사회전반에 번졌다. 하지만 프랑스 특유의 '톨레랑스'정신,속지주의 원칙, 중앙집권 체제로 이질적인 문화요소를 흡수해 프랑스적 단일성을 지켜나갔다. 그래서 프랑스는 외국인에 너그러운 나라로 인식돼왔다.

그런 프랑스의 동화 능력은 북아프리카 마그레브 국가(알제리, 모로코, 튀니지) 출신 이민자들의 집단적인 사회 부적응으로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19세기 말∼20세기 초 이탈리아, 벨기에 등에서 프랑스로 이주한 유럽이민자들은 쉽게 동화됐다. 반면 1945년 이후 유입되기 시작한 마그레브 국가 출신의 이민자들은 파리 외곽의 도시빈민으로 전락했다.

70년대 경제 위기로 저임금ㆍ비숙련 노동자인 마그레브 이민자들이 제일 먼저 일자리를 잃었다. 경제적ㆍ직업적 통합이 불가능해지면서 서서히 소외계층으로 전락해갔다. '이민자 2세'의 좌절감은 프랑스 사회의 불안요인이다. 또한 프랑스는 단일성이 붕괴됐으며 극우주의자들이 판치는 세상으로 바꿨다.

지금 프랑스사회는 '소셜믹스'의 실패를 문화적 차이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강하다.프랑스는 중장기적으로 이민자 문제에 대한 해법을 잃었다. 첫단추가 잘못 끼워져서다. 이민자들에게 직장과 신분 상승의 기회를 적절히 분배하지 못한 게 가장 큰 원인이다. 우리도 다문화와의 융화를 위해서는 먼저 일자리, 임금, 교육 등 경제적인 지위 확보 기반을 강화시켜주는데서 시작돼야한다. 언어교육, 예절교육, 문화 학습 등의 프로그램을 내놓고 요란 떠는 지자체들이 많은데 본질을 피해간 듯 하다.

우리 역사에서 귀화 이민족을 다루는 기법은 거의 비슷하다. 우선 땅과 벼슬을 주고, 기회를 주고, 통혼을 권장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참 훌륭한 방식이다. 앞으로도 꾸준히 그렇게 하길 기대한다.

이규성 기자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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