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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딸깍발이]'李경제'와 '趙살림'..위대한 CEO들

최종수정 2012.05.29 15:54 기사입력 2011.07.19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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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
[남산딸깍발이]'李경제'와 '趙살림'..위대한 CEO들
수십년전 '李경제'는 해지는 땅 서산에서 꽃신을 신고 온 여인 '趙살림'을 만나 일가를 이룬 이래 왕국의 백성에게는 '지저스'였으며, '아우구스투스'였다. 세상사람들의 눈에 그는 그저 필부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의 옹색한 살림살이 또한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누구에게도 비할 수 없는, 자기 삶의 위대한 경영자였다.

◇ 농토 늘리기

"시집 온 첫날 밤. 그이는 "자식들 여한 없게 공부는 확실히 시키자.그러면 가난을 물러주지 않아도 된다. 잘 살아보자"고 말하드라. 그 말을 듣고 있자니 참 듬직하드라. 그냥 믿고 살면 되겠다 싶드라." 趙살림의 얘기다.

땅 한 뛔기 없던 '李경제'와 '趙살림'이 농토를 늘려간 방식은 독특했다. 우선 가장 싼 땅을 구입했다. 대개 야산이거나 개간하기도 힘든 땅들이었다.땅을 마련한 다음 맨먼저 방죽을 팠다. 방죽 혹은 샘을 만들기 어려운 땅에조차 옹달샘이라도 팠다. 그래서 물을 조달해 논밭을 만들었다. 나머지는 밤나무같은 유실수를 심었다.

마을사람들은 종종 말한다. "논에 얼마나 거름을 제대로 했던지 모내러 들어갔더니 발이 푹푹 빠지고, 거품이 부글부글 끓었다. 비탈논이 도무지 옥토로 바뀔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렇다. 이경제의 전략은 그의 영혼만큼이나 단순했다. 남들이 쓸모없다고 버린 땅을 헐값에 장만해 비옥하게 경작하는 것이었다. 그가 평생 마련한 땅은 모두 산비탈에 있으며 대부분은 개간한 것들이다.
그의 전략은 곧 주효했다. 오래지 않아 자급자족할 땅을 갖췄고, 머슴에서 자영농으로 변신했다.
그는 일찌기 아버지를 여의였다. 물러받은 것이라고는 장대한 기골뿐이었다.수중에는 단 한푼도 없었다. 그는 두 형제와 홀어미를 모신 장남으로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소년가정였다. 감히 학교 근처에는 가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당연히 일자무식였다. 하지만 그는 붉은 얼굴에 강인한 근육을 지닌 장사였다. 그래서 오로지 무엇이든 몸으로 때우는데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 소출하기

그의 농사법도 독특했다. 대개 환금작물을 심는 농부들은 그해 값이 뛸 품목을 정해 집중적으로 심었다. 마늘이나 배추 혹은 특용작물을 한꺼번에 심어 큰 돈을 노렸다. 실제로 이웃들 중에는 한 품목이 올인해 한몫 단단히 챙기는 경우도 많았다. 대신 시세가 폭락할 때는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그는 달랐다. 그는 밭 전체를 일정구간으로 나눠 모든 작물을 거의 비슷한 넓이로 심었다. 그러니 한작물을 왕창 생산하는 일이 없었다.여러가지 작물로 적은 양을 생산, 판매했다. 농작물마다 들쑥말쑥한 시세에도 불구하고 수입을 일정하게 유지하는데 집중했다.

짐승도 여러 종류를 다 키웠다. 소 두마리, 돼지 다섯마리, 염소 열마리, 개 열마리, 닭 스무마리, 벌 열통 등으로 나눴다. 사료를 사지 않고 기를 수 있는 양을 하되 최대한 다품종화했다. 일년 열두달 어느 하루도 쉬는 날이 없고 여행을 하는 일은 엄두내지 못할만큼 일 했다.

논에서 얼마 ? 밭에서 얼마 ? 짐승과 벌 사육으로 얼마 ? 밭의 경우는 콩부터 배추, 마늘, 생강, 고추 등등 수만가지 작물에서 수익을 냈다. 수확이 끝나면 종자로 쓸 우량품 일부를 챙겨 별도로 보관했다. 나머지 소출들도 아무리 돈이 급해도 시세가 좋은 시기까지 기다렸다. 그러려면 보관이 수확만큼 중요했다.

그는 창고 다섯 칸과 토굴 한개를 가졌다. 그가 얼마나 보관에 철저한지는 토굴이 잘 말해준다. 토굴은 생강보관용이다.

생강은 수확철인 가을엔 헐값이다. 그러나 봄에는 값이 수확기인 가을보다 두세배가 넘는다. 생강이란 놈은 냉해에 약해 보관이 매우 중요하다. 웬만한 토굴로는 감당이 안 된다. 그래서 이경제는 무려 10년동안 수직 15m, 수평으로 15m나 되는 토굴을 팠다. 굴속은 어른들이 일어서서 작업할만큼 높았고 널널했다. 아마도 사방 100리안에 사람이 판 굴 중 가장 큰 것일 것이다. 토굴이라기보다는 갱도와 같을 지경였다.  

◇ 빚

그의 첫번째 경영 원칙은 절대로 빚을 지지 않는 것이었다. 빚을 지지 않기 위해서 투자를 늘리거나 일손을 사지 않았다. 그 대신 이경제와 조살림이 할 수 있는 한도만큼 일했다. 그 한도만큼이란게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해도 남을 정도였기는 했지만.

예전에 시골에서 적당한 투자처가 없었던 듯 하다. 은행이나 농협도 크게 신뢰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이경제는 계를 하거나 쌀을 이웃들에게 빌려줘 얼마간의 이자소득을 얻었다. 당시 시골에서 가장 일반적인 방식였다. 40∼50년전 연간 쌀 한 가마니당 한말의 이자를 받았다. 은행보다는 그렇게 이웃들간에 서로 빌리고 빌려주고 그랬다. 그러다가 이경제는 고등학교 다니던 큰 아들이 "이웃들한테는 이자놀이 하지 마시라"는 충고를 들은 이후 정리했다.

밖으로 돌리던 쌀들을 모두 모아서 서울의 누나한테 맡겨 돈을 좀 불렸다. 그이는 절대로 술, 담배를 하지 않았다. 한가한 날마저 주막거리에 나가는 일도 없고, 여행을 하지도 않았다. 비가 오는 날에도 집을 수리하거나 창고, 축사 등을 지으며 보냈다. 심지어는 장인, 장모의 생일에도 아내만 보내고 혼자서 일했다.

그래서 장인한테 '지독한 사람'이라고 혼났다. 늘 일만 했다. 절약에 있어서는 가히 원자바오의 '11년된 점퍼' 급이었다.세상의 모든 수사학도 그의 근검함을 표할 수는 없다.

대신 아이들 교육은 조살림의 몫이었다. 한달에 한번 조살림은 서울, 대전, 공주로 흩어져 학교엘 다니는 자식들을 순회하곤 했다. 그들은 학비와 생활비 혹은 먹거리를 제때 정확히 전해줬고, 단 한번도 늦거나 이른 적이 없었다.  

 
◇ 매년 겨울

매해 겨울 그의 경영비법이 열렸다. 그 시간은 어린 아들들의 학습場인 동시에 세미나다. 이른 저녁 식사 후, 이경제가 아들에게 낡은 공책 하나를 펼쳐 놓았다. 낡은 공책에는 기상천외한 기호와 숫자들이 널려 있었다. 그가 아는 글자는 아라비아 숫자 열개 뿐이다. 기호들은 그가 창안한 어떤 표식들이다.

그림 혹은 갑골같은 기호, 절기와 파종을 표시한 빗살 등의 다양한 문양들이 가득했다. 거기 숫자들이 연필로 굵게 그려져 있었다. 오픈 아키텍처의 창제자인 위대한 CEO 세종도 울고 갈 고안물들이다. 그는 글자를 그렸다. 그가 새 공책에 그림글자를 다시 정리하기 위해 아들을 앞에 앉혀둔 것이다. 그가 노래처럼 정리할 내용을 읊조렸다.

"너는 내가 부르는 대로 다 받아 적거라. 시작한다."
먼저 밖으로 나가 있는 쌀이나 계 등 투자된 부분부터 이뤄졌다.
"양지말 정씨네 쌀 열가마, 방아미 박씨네 스무가마... 모두 몇 가마니 ? 다 적었으면 더해봐라."


다음은 소출을 정리할 차례다.
"쌀 00가마, 보리 00가마, 콩 00가마..."
"송아지 판거 00만원, 개 다섯마리 00만원, 돼지랑 염소 00만원..."

그의 비상한 머리가 작동하면 그 많은 걸 어찌 기억하는지 궁금할 지경였다. 간혹 자신의 장부를 열어 확인하고, 되짚어 보기는 했지만 실제로 놀랄만한 기억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비료와 농약, 종자 구입비 등을 정리했다. 월별 수입, 지출들이 정리되고 예산 책정이 이뤄졌다. 대개 심을 작물과 예상 가격으로 일년동안의 수입을 추정했다. 다음으로는 제일 큰 비용인 자식들 교육비에 대한 정리를 시작했다. 큰 아들부터 막내까지 여섯명마다 각 비용이 따로 산출된다. 따로 산출된 이유는 서울에서 하숙하며 대학엘 다니는 큰 아들, 지방에서 고등학교엘 다니느라 자취하는 작은 아들 딸들의 사정이 각기 달랐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남은 돈을 따져 농토나 야산 구입, 경운기 등 농기구 추가 구입 예산을 별도로 책정했다.

......
......

필부의 삶, 옹색한 살림에도 전략이 있고, 경영이 있고, 계획과 미래가 있을진대 이 나라는 왜 이런가 ? 화려한 장밋빛 미래를 약속했던 위대한 CEO들은 어디로 갔는가 ? '어떻게 이 지경까지...!!' 빚더미에 빠진 나라. '가계 빚 1000조원, 국가채무 650조원(공공 213조 포함)'. 빚의 공포가 유령처럼 떠돈다. 공포는 빚뿐이 아니다. 금리 인상, 물가상승으로 서민경제도 악몽에 빠졌다. 신년초 정부는 올해 경제운영목표로 5% 성장, 3% 물가상승률을 제시했다. 대통령은 '앞으로의 10년은 대한민국이 명실상부한 세계 일류국가가 되는 기간이 될 것'이라고도 했다. 헌데 하반기 경제목표는 4.5% 성장, 4% 물가상승으로 수정했다. 세계 일류국가로 가는 길목에 서민들이 얼마나 더 쓰러질 지 알 수 없다.

'희망은 있다고 ?'

그건 신뢰할 수 있는 정부와 정책, 솔선ㆍ강직한 공직자, 희생하는 지도층이 있을 때 가능한 말이려니...... 




이규성 기자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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