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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일칼럼] '머슴'의 위기, 오너의 리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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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월급쟁이 사장은 찬밥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주 주재한 대기업 회장이나 중소기업인 면담행사에 거의 대부분 오너만 초청됐다. 예외적으로 불가피하게 오너가 참석하기 어려울 경우나 장관급 정도의 얼굴 마담 역할을 하는 월급쟁이 사장이 대리 참석했을 뿐이다.

건설회사의 최고경영자(CEO) 출신 대통령도 아는 것이다. 월급쟁이 사장이 힘이 없다는 것을, 오너가 한마디 말하면 바로 다음 날부터 회사를 그만두어야 하는 게 월급쟁이 사장인 것을... 그런 월급쟁이 전문경영인들을 데리고 무슨 이야기를 하겠는가. 대통령이 듣고 싶어 하는 그룹의 장기적인 투자 계획을 그들이 제대로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한보그룹 정태수 전 회장 말대로 "머슴(전문경영인)이 알면 뭘 아느냐"는 인식은 우리 사회에 여전히 팽배하다. 실제 대표이사를 맡은 '머슴'은 인사권도 통제받고 투자 계획도 그룹 회장실이나 비서실을 통해 오너의 승인을 받는다. 그러니 머슴이 밖에 나가 마음대로 말할 수 있겠는가.

기업 비밀에 속하는 투자계획도 거리낌 없이 발표할 수 있는 것도 오너였기에 가능했다. 한국 기업을 꺾으려고 호시탐탐 엿보는 다른 나라의 기업들은 박수를 쳤을 것이다. 사업 방향이나 투자계획이 노출될까 우려해 외국기업들은 사무실 전화번호도 공개하지 않는다. 한국 대기업들은 한해 투자, 사업 방향까지 공개적으로 대통령 앞에서 까발린다. 이런 고급 정보를 너무 쉽게 얻을 수 있어서 그리고 그런 어처구니없는 짓을 하는 한국 정부와 한국 기업을 쉽게 이해하기 어려워서 외국 기업들은 쓴 웃음조차 지었을 것이다.

사실 대통령 앞에서 월급쟁이 전문경영인들이 중요한 이야기를 한들 언제 잘릴지 모르는 인사들의 이야기에 어떤 무게와 신뢰가 실리겠는가. 실제 어느 대기업 대표이사는 선임된 지 1년만인 작년 말 목이 날아갔다. '회사가 더 젊어져야한다'거나 '분위기를 바꿔야한다'는 오너의 결심에 따라 '사표를 내달라'는 한마디에 그만두어야 하는 게 한국 전문 경영인 현주소다. 게다가 이유조차 알려주지 않고 사표를 받는 경우도 다반사라고 한다.
상법상 임원 임기 3년은 말 뿐이다. 이사회 해임 절차는 사후 요식행위다. 오너가 밑의 직원을 시켜 말로 통보하면 그뿐이다. 오죽하면 임원을 '임시직원'이라고 부르는 자조적인 말이 생겨났겠는가. 웬만하면 법정 임원 임기를 보장해주고 그 안에 밀려날 경우 상당한 보상을 해주는 선진국과 다른 것이다. 그런 설움을 받으니 다들 이 악물고 '더러운 월급쟁이 못하겠다'고 뛰쳐나와 하는 창업을 하는 바람에 자영업자의 과잉을 빚어내는 것이 한국이다.

월급쟁이 전문경영인은 권리도 주장하지 못하고 언제든 밀려날 위기를 맞고 있다. 희한한 것은 전경련, 상공회의소 등 오너들의 단체만 부각되지 전문경영인들을 대표할 만한 버젓한 전국 단체는 이 땅에 찾기 힘들다.

어느 대기업 사장은 "앞으로 한국경제의 최대 리스크는 오너들에서 비롯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각고의 노력으로 기업을 일구고 키운 창업 1세대가 물러나고 제2, 제3세대로 넘어가면서 어려움 없이 쉽게 큰 자리를 차지한 오너들이 전면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너의 능력이 자신의 주변 월급쟁이 전문경영인들보다 못한데도 불구하고 주요 결정을 내릴 경우 기업 전체의 위기를 몰고 올 수 있으며 특히 대기업에 크게 의존하는 한국경제도 휘청거릴 수 있다는 것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오너만 좋아하는 한국 정부도 귀담아들어 둘 경고다. 위기 예방을 위해 정부도 오너들만 찾지 말고 월급쟁이 전문경영인의 의견을 들어보고 그들을 우대해 봄직하다.



이상일 논설위원 bru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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