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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일칼럼]희망퇴직하는 K형께

최종수정 2010.10.25 11:07 기사입력 2010.10.25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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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일칼럼]희망퇴직하는 K형께
수천명이 은행을 그만두겠다고 신청했다는 소식이 들려 혹시나 해서 K형에게 전화를 했지요. '나도 신청했다'고 심드렁하게 말한 형은 더 버티지 그랬느냐는 물음에 이렇게 말했지요. '회사에 넌더리가 나서…' , '우리 하는 서비스가 대단한 것도 아니고 그저 그렇지 않나', '더 젊은 후배들도 그만두는 판인데 눈치도 있고….' 그러면서도 형은 '윗분들이 새로 와서 뭔가 해보지도 않고 나가라고 하니…' 원망도 슬쩍 비쳤습니다.

은행이 퇴직자에게 아이들 대학 학비도 대준다니 남들한테 부러움도 받지요. 다른 은행에서 비슷한 나이의 지점장들이 수년 전에 대부분 그만두었고 일반 기업에서는 50세가 되기 전에 나간 사람이 수두룩하지요. 그에 비하면 K형은 행복한 셈이지만 말이 '희망퇴직'이지 자의반 타의반으로 나가는 사람 심정이야 어디 그런가요. '나와서 뭘 할 것이냐'고 묻자 거꾸로 '뭘 할 게 있느냐'고 반문했듯 막막하겠지요.

은행이 퇴직자들에게 2년 정도는 이런저런 임시 일거리를 챙겨준다고 하나 한번 밀려나서 다시 은행의 본류에서 일하기 힘들다는 것은 누구나 알지요. 빵집을 내거나 부동산 중개사를 하는 사람이 많지요. 금융계 종사자들은 농담삼아 '정치에 끈이나 대볼까' 하지요. 60, 70대에도 일하는 사람을 보면 자영업자, 기업 오너가 아니면 정치인이거나 정치적인 끈을 잡은 사람이더라는 한국 풍경을 꼬집은 것이지요.

K형을 비롯한 은행원이 대거 퇴직 신청한 즈음 이 나라 은행 풍경은 초라했습니다. 주요 20개국(G20) 회의로 외국의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들이 한국으로 몰려오는데 내로라하는 이 나라 은행장들은 오히려 외국으로 나갔습니다. 정치인들이 국정감사에서 벼르고 있어 몸을 피한 것이라는 말이 돌았습니다.

K형 은행의 가장 높은 분이 생산성이 높다고 부러워한 다른 은행의 지주회장도 외국으로 나갔습니다. 집안싸움이 세간의 화제가 되고 차명계좌도 드러났습니다. 이 은행은 정부 간섭없이 수십년간 주주들끼리 운영해서 정부가 우리나라의 이상적인 은행 모델로 여긴 곳이었습니다. 이제 스타일을 확 구긴 후 며칠 후 이사회를 열어 과연 어떤 모델로 경영을 해나갈지 궁금합니다.
그런가하면 비슷비슷한 2개 은행들은 서로 합치되 어느 쪽이 주도권을 쥐느냐로 신경전을 벌였지요. 또 다른 은행은 매각이 임박해 이사회 의장이 사임했다고 합니다. 이들 은행은 이미 합치거나 팔려본 전력이 있는데 경쟁력은 크게 높아진 것 같지 않고 계속 이합집산만 하는 양상입니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외국에 나가 이름을 떨치고 달러도 벌어들이는 반면 국내 은행들은 그저 '내수용'입니다. 안에서만 저들끼리 싸울 뿐 외국 은행을 누를 실력도 못됩니다. 은행 소유권을 재벌에게는 못 준다고만 했지 또 여전히 정부는 낙하산들을 내려 보냅니다. K형 말대로 '그저 그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은행이 된 것은 관료들과 정치적 성향 인사들을 내려 보낸 정부 탓인가요, 아니면 뱅커들의 무능 때문일까요. 그도 아니면?

K형, 언젠가 계산을 해본 적이 있지요. 80세 넘어까지 산다면 K형이 입사한 후 지금까지의 시간만큼이 앞으로 남아있다고. 그러면 퇴직 시점을 '수습'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형이 은행에 '넌더리가 난다'고 했으니 재취업 방향을 금융에서 다른 쪽으로 확 돌리는 것은 아닌가 싶네요. 그렇다고 행여 어떤 요행을 바라고 정치 쪽으로 눈을 돌리지는 마시길 바랍니다. 이 나라 은행의 이상 모델과 경영의 정답은 아직 암중모색이지만 분명한 것은 정치 바람, 관 바람이 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지요.


이상일 논설위원 bru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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