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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우의세상엿보기] 조영남의 탁구대

최종수정 2010.08.18 13:32 기사입력 2010.07.02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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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칭 '화수'(畵手)라고 불리어지길 원하는 남자. 외로움 탓일까? 그가 잠시나마 '뇌경색'이란 낯익은(가족병력) 친구와 병상에서 동거를 한 후 돌아 온 거실은 예전 같지 않았다. 먼저 피아노가 서재로 쫓겨났다. 그 자리엔 자동 송구장치를 부착한 탁구대를 들여놓았고, 유연하게 받아치는 핑퐁의 선명한 똑딱임에 벽시계의 침묵은 일상이 된지 오래다.

다리에 힘이 붙는 것을 느끼며 운동에 마음을 주기 시작했다. 붓을 놓고 아령을 드는가하면 헤드폰을 끼고 러닝머신 위를 달리고, 복근단련을 위해 허리운동도 하며, 헬멧을 쓰고 자전거를 끌고 다니는 대변화. 뛰고 땀 흘리는 사람들을 평소 비웃으며 살아왔던 그가 드디어 운동과의 사랑에 흠뻑 빠진 것이다.

'육신은 도미노와 같다'는 말도 있다. 멀쩡하다가도 어느 한곳이 쓰러지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무너지고 만다. 다행히 조영남은 첫 번째 도미노가 기울 때 운 좋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예순에 스키를 배운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야 왕년의 아마레슬러였지만, 스포츠와 담을 쌓았던 조영남이 그보다 더한 나이를 극복하고 헐떡거리는 호흡을 가다듬는 중이다.

그의 실험은 때와 장소를 초월했었다. 카메라 앞에서 터놓고 온몸으로 깔깔거리며 윗도리를 벗어던지는 연예인은 오직 조영남 한 명이었다. 2003년 10월 2박3일간 평양 정주영체육관 개관기념식 축하공연차 방북 시엔 당시 남한에서 유행하던 힐리스(바퀴달린 신발)를 신고 무대를 빙 돌며 묘기를 선보였다. 승산이 없는 얼굴대신 신발을 활용하여 방북연예인 중에 최고로 박수를 받은 아이디어맨이었다.

그림과 노래, 기타와 피아노 연주는 물론 작곡과 다양한 글쓰기까지 감행하며, 자신의 색깔을 분명히 내고 있는 만능예능인. 가수로 섰던 유명 공연무대는 셀 수도 없고, 십여 차례의 국내외 전시 때는 출품작 대부분이 팔려 나갔던 저력 있는 화가이다. 개인 전시회에서 직접 피아노를 연주하며 덤으로 노래까지 불러주는 재능에 누구나 격의 없이 사귈 수 있었다.
사회와 문화, 종교문제 등에 이르는 여러 권의 책을 내놓고 욕먹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용감한 필자였기에, '예수의 샅바'를 잡은 책도 썼고 감히 '친일선언'을 내뱉은 책도 출간할 수 있었다.

그가 20대 후반부터 '언젠가는 써보겠다'고 다짐해왔던 숙제를 마무리한 책. 요절한 시인 이상의 시 100여 편에 대한 나름의 해설서인 <이상은 이상 이상이었다>를 탈고하는 후유증의 산물이 뇌경색이었을 것이다. 그의 도전정신에는 혀를 내둘러도 모자란다. 타고난 목소리로 노래하는 것을 제외하곤 모든 것이 도전의 산물이니.

만약 한류스타 박용하가 30대로 목을 매기 전에 1박2일 정도만 그와 함께 생활했더라면 그 새파란 나이에 스스로 생을 마감하지 않았으리. 조영남도 우울한 날을 경험하며 살아남았다는 흔적이 있다. 어느 인터뷰에서 인생을 제대로 사는 방법에 대해 답하기를, "인생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사는 방법은 없다." "자살하기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에 삶을 추슬러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했기 때문이다.

남이 미처 생각하지 않는 말과 행동을 도발하며 이름 앞에다 '천하제일의 잡놈'이란 수식어를 붙여놓고 당당했던 사나이. 이 위인도 시니어의 반열에 오르자 가끔은 훗날을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빈소에서 동료들이 불러줄 그의 대표곡이 혹시 '화개장터'가 되어 좌중을 웃길까봐 고민하는 진지함이.

그날을 대비하여 일찍부터 생각해 두었다는 기발한 자신의 묘비명이 '웃다 죽다. 조영남'이라고 했다. 조용필이 불렀던 '그 겨울의 찻집'의 노랫말, '아~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에서 영감을 얻은 것은 아닐까.



김대우 시사평론가 pdik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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