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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범칼럼] '집들이'를 아시나요

최종수정 2010.08.18 13:29 기사입력 2010.05.24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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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 않고 집들이 한 22명 입건'. 이게 무슨 황당 시추에이션?

요즘 젊은이들이 들으면 아주 먼 나라, 혹 가깝게는 저쪽 북한 얘기쯤으로 흘려버리려 하겠지만 우리에게도 분명 이런 시절이 있었다. 그것도 불과 30여 년 전, 서슬 퍼렇던 군사정권시절의 이 신문기사는 순수 목적의 모임조차도 불순한 의도를 막겠다며 엄중 차단했던 억지 춘향 식 당시 정권논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집들이―보다 넓은 의미로는 이사 때만이 아닌 일반적인 집으로의 초대―는 가까운 사람들 간의 사적 만남의 장(場)이다. 즉 친척 친지 친구 직장동료 스승 제자 이웃 등이 얼굴을 마주하는 네트워킹 기회다. 때문에 대화에 정(情)이 담겨 격의가 있을 수 없었으며, 다소 과장은 있을 수는 있어도 허위나 위선을 통한 기만이나 현학적 지적 오만 등이 자리 잡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집들이=가까운 소통'이다 보니 어른들은 나름 진지하고 솔직 담백하게 속내를 털어내며 현실을 주제로 속 깊은 대화를 나눴다. 아이들도 어른들 얘기를 귀동냥하려 귀를 쫑긋했다. 통신수단이 미흡했던 시절 당연히 그 파급력이 클 수 밖에 없었다. 학교로, 직장으로, 이웃으로... 허물 많은 과거 정권이 집들이마저 두려워 한 것은 북한이 '오호담당제(五戶擔當制)'로 이웃을 서로 감시하게 했던 것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면 지나친 비교일까.

그리 오래된 일도 아닌데 아주 딴 세상 이야기처럼 들린다면 분명 그것은 우리네 변화 속도가 그만큼 빠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온통 온라인 세상으로 변해 하루만 게으름을 피우면 마치 크게 뒤떨어지는 느낌이 드는 세상이라 집들이 같은 '면(面) 대 면(面)' 오프라인 네트워킹의 역할이 미미한 수준에 다다른 것도 사실이다.
한때 보편ㆍ담백ㆍ소박한 인적 네트워킹 수단이었던 집들이는 불과 10여년 사이 용어사용 빈도가 거의 없을 정도로 우리 곁을 떠났다. 통신수단의 발달, 생활수준의 향상과 외식문화 정착, 교통난에 따른 이동의 불편 등 복합적인 이유가 작용했음은 물론이다.

한참 잊고 있었던 집들이 또는 집 초대를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은 최근 한 기업체 간부의 '집들이 네트워킹론'을 듣고 난 후부터다. 그는 여러 계층의 지인들을 자주 집으로 초대한다고 했다. 식당으로 초대하는 것은 비용문제를 떠나 왠지 정이 없어 보이며, 더나아가 집들이를 통해 십시일반(十匙一飯)의 협동정신과 '인간의 얼굴을 한' 네트워킹을 함께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초대받은 손님들은 집들이 모임의 날 각자 한가지씩 먹거리나 마실 것 등 자신이 편한 것을 준비해온다. 하나씩 적당량을 들고 만나 취미를 교환하고, 교육 등 실생활 정보를 나누고, 정치ㆍ경제를 걱정하고... 아이들도 현실의 만남을 통해 더 깊이 사귈 수 있는 기회를 갖게된다. 익명으로 얼굴을 가린 온라인 네트워킹이 채워줄 수 없는 보다 인간적인 면을 집들이가 담고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사실 요즘 TV에서조차 사람들을 만나 함께 부대끼고 호흡하며 기쁨도 고생도 같이하는 리얼리티 예능프로그램이 큰 인기를 끄는 것을 보면 온라인세상이라 해도 여전히 사람냄새에 대한 그리움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어쩌면 온라인에 빠지면 빠질수록 리얼리티에 대한 향수가 더 깊어지는 게 인지상정이 아닐까. 소위 소셜네트워킹씨스템(SNS)으로 불리는 온라인세상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폭넓고 기대이상으로 빠르기는 하지만 왠지모를 허전함을 여운으로 남긴다.

"자, 이제 가끔 집들이를 통해 온라인이 남기는 인간적 여백을 채우자"고 한다면 시대에 뒤떨어진 구시대 발상일까.



최범 편집제작담당 전무이사 c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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