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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지난 설 당신은 누구의 집에 갔습니까

최종수정 2019.02.11 10:16 기사입력 2019.02.11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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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지난 설 당신은 누구의 집에 갔습니까


[아시아경제 신범수 기자] 출가한 아들이 그의 배우자와 자식들을 데리고 고향 부모님을 찾는 명절 풍경은 예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여성들이 음식을 만들고 치우며 남성들은 텔레비전을 보거나 손님과 술을 마시는 장면 역시 마찬가지다. 남성들이 예전보다 부엌일을 더 많이 하며 차례상이 간소화 된 변화도 있지만 본질적이지 않다.


즐거운 자만큼 괴로운 이도 많은 명절, 심지어 두려움의 대상이 돼 버린 명절은 이제 하나의 문화 행위로서 그 지속 가능성에 의심을 받고 있다. 이것은 명절 가사노동으로부터 여성을 해방시켜야 한다는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는 명절을 둘러싼 갖가지 잡음이 세대와 젠더 갈등의 또 다른 빌미가 되기 전, 발전적이고 건강한 방식으로 변화를 모색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화제가 된 시댁 식구들 호칭 문제나 명절 당일 친가와 처가를 번갈아 '먼저' 방문하는 식의 시도가 싹트는 현상은 흥미롭다.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거부하든 아니든 '시집을 간다'라는 표현은 머지않아 사라질 것이다. 지금의 결혼 제도는 한 여성이 자신의 집을 떠나 남편 가족의 일원으로 편입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보다 새로운 가정 하나를 꾸리는 행위로 간주된 지 오래다. 한편 명절은 그 집안 사람들이 모이는 중요한 연례행사다. 두 집안의 가족행사가 같은 날 같은 시간 다른 곳에서 열리는 것이다. 자신을 키워준 부모님 곁으로 가고 싶은 마음에 남녀가 다를 리 없다. 애지중지 키운 딸과 새해 첫날 떡국을 함께 먹고 싶다면, 당신의 며느리도 그의 집에 갈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이런 낯선 변화는 해결해야 할 여러 문제들도 낳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건 우리의 결단 여부다. 명절에 참여하는 사람이나 집단의 역할과 관계가 달라졌다는 현실을 부정할 수 없다면, 명절을 이루는 내용과 형식 역시 그에 맞춰 변해야 한다는 것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크게 향상됐음에도 불구하고, 극단적으로 말해 지금의 명절 속 며느리는 외부에서 공급된 하나의 노동력에 머물러있다. 며느리를 딸처럼 사랑하고 진심으로 아껴주는가는 별개 문제다. 반면 사위는 늦게라도 딸과 손자ㆍ손녀의 얼굴을 보여주는 귀한 손님의 지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아울러 농경 씨족사회의 협력 필요성에 의해 만들어진 명절이 현 시대에도 그 의미를 갖느냐 아니냐,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집단의 세(勢)를 과시해야 살아남는 약육강식의 세상에서 단 한 명의 핏줄이라도 더 결속시키려는 행위가 여전히 유효한 삶의 방식인가 아닌가도 그렇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명절의 시대적 의미와 필요성만 따지고 든다면 자칫 논의를 산으로 이끄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금과 같은 방식의 명절쇠기가 우리 삶을 더 풍요롭게 해주는지 혹은 그 반대인지 냉철하게 자문해보는 일이다.

그래서 어떻게 할 것인가. 10, 20대 청년들이, 절반 이상은 외동인, 앞으로 결혼 제도에 진입한 이후에도 우리는 지금의 명절 모습을 유지할 수 있을까. 변하지 않으면 변함을 당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우리 모두는 깊은 상처를 입게 될 것이다. 관습의 끝자락을 붙들고 버틸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어떤 가치만은 양보할 수 없다는 신념은, 오히려 변화를 주도할 때 지켜낼 수 있다.




신범수 사회부장 answ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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