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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감자 실컷먹고 잘 지낸다던 삼촌

최종수정 2018.08.02 13:45 기사입력 2018.07.27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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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종 산업2부 차장

강희종 산업2부 차장

[아시아경제 강희종 기자] 몇 해 전 집안이 발칵 뒤집힌 적이 있다. 난데없이 국가정보원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고 나서다. 6ㆍ25전쟁 때 실종돼 돌아가신 줄만 알았던 삼촌께서 북한에 살아계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남북 이산가족 상봉 때 만나고 싶으면 신청을 하라고 했다.

그때부터 집안 어른들은 몇 달 동안 설레는 마음으로 만남을 준비했다. 어떤 선물을 준비해야 할지 수소문했고 삼촌께 드릴 '달러'도 마련했다. 상봉장에 직접 가지 못한 기자는 이후 친척 어르신에게 그때 상황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수십 년 만의 만남은 감동적이었지만 한편으로 당황스러운 점도 적지 않았다 한다. 특히 삼촌이 말끝마다 '위대한 수령님'을 거론할 때는 어찌 대응해야 할지 몰랐다고 한다. 집안 어르신과 같이 사진을 찍은 삼촌의 모습은 말 그대로 바짝 마른 촌로였다. 아마 '출신 성분'이 좋지 못해 평생 시골벽지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럼에도 "수령님 덕분에 감자를 실컷 먹고 잘 지낸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했다고 한다.

최근 남북 정상회담, 북ㆍ미 정상회담을 지켜보면서 사진 속 삼촌의 야윈 모습을 떠올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6월12일 싱가포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난 뒤 "북한 주민들을 사랑하는 훌륭한 지도자"라고 김 위원장을 치켜세웠다. 그 뒤로도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 대한 칭찬을 멈추지 않았다.

그의 영향을 받아서였을까. 얼마 전 이낙연 국무총리도 김 위원장을 "백성의 생활을 다른 것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도자"라고 평가했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작가)도 며칠 전 "재벌 2ㆍ3세 중 김정은처럼 혁신하는 사람이 있냐"고 말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산골 마을 판잣집 같은 곳에서 일 년 내내 감자만 먹으며 살고 있을 삼촌을 생각하면 "북한 주민을 사랑한다"는 이들의 표현은 정말 믿기지 않는다.

협상을 위해 상대방을 인정하고 배려하는 태도는 필요하다. 한국과 미국 정부가 최근 몇 달간 북한의 인권 문제를 거론하지 않은 것도 '판'을 깨지 않으려는 노력으로 이해된다. 신뢰를 쌓기 위해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중단하는 것도 좋은 결과를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다. 그렇다고 없는 말까지 지어내며 상대방을 미화한다면 이는 협상이 아니라 아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얻어낼 수 있는 것은 세간의 비웃음일 뿐이다.
미국에서도 김 위원장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칭찬은 이미 수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가 역사를 만들기 위해 독재자에게 아부했다"고 비꼬았으며, CNN은 "가족을 죽이고, 정치범수용소에 수만 명을 가두고 있는 사상 최악의 독재자에게 미국 대통령이 한 말이라고 믿을 수가 없다"고 개탄했다. 심지어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보이는 지나친 유화적 태도는 노벨평화상을 노린 포석이라는 해석까지 나오고 있다.

북ㆍ미 정상회담 이후 교착 상태에 빠졌던 비핵화 협상은 최근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서해위성(미사일)실험장 폐쇄 움직임이 포착되면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풍계리 핵실험장과 마찬가지로 이번 동창리 실험장도 외부의 검증 없이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쓸모없어진 실험장을 없앨 뿐 내부적으로는 핵을 계속 개발하고 있다는 의혹의 눈길을 거두지 않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몇 달간 북한의 핵 실험과 핵 위협이 없어졌다며 대단한 성과인 것처럼 포장하고 있다. 핵 실험과 핵 위협은 협상 결과에 따라 언제든지 재개될 수 있는 신기루와 같은 것이다. 그리고 김 위원장의 독재하에 여전히 대다수 북한 주민은 노예와 같은 생활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강희종 기자 mindl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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