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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길의 가을귀]도요토미는 왜 가톨릭을 배신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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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길의 가을귀]도요토미는 왜 가톨릭을 배신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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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명나라 침공 위해 포교 허가...나중엔 일본 전역 기독교인 학살극

기리시탄(막부시대 일본의 기독교 신자) 무리가 온천으로 끌려온다. 데워져 나오는 샘이 너무 뜨거워 지옥으로 불리는 지대. 김이 펄펄 나서 지척도 분간할 수 없다. 잘려 나간 머리들이 여기저기 나뒹군다. 기리시탄들의 운명이다. 벌거벗은 가슴에 끊는 물이 떨어져도 배교를 거부할 테니. 멀찍이 서서 살육의 현장을 지켜보던 크리스토바오 페레이라 신부(리암 니슨)는 무릎을 꿇고 만다. 심경은 편지로 전해진다. "1633년, 하늘 아래 평화. 하지만 이곳에서 저희는 평화롭지 않습니다. 일본이 이렇게 부흥할지도 몰랐지만, 지금처럼 박해가 심할 줄도 몰랐습니다. (중략) 이들의 용기는 이곳에 남은 신부들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저희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교인들을 버리지 않을 겁니다. 하느님의 사랑으로 더욱 굳건해 질 겁니다."
영화 '사일런스(2016년)'는 17세기 일본의 가톨릭 박해를 다룬다. 페레이라 신부의 제자인 세바스찬 로드리게스(앤드류 가필드)와 프란치스코 가르페(아담 드라이버)는 스승이 일본에서 배교했다는 소문의 진위를 파헤치려고 승선한다. 막부 정권의 박해를 피해 몰래 신앙생활을 이어가는 신자들에게 미사를 집전한다. 그러나 기독교를 말살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하는 적대적 문화 앞에 마음이 동요한다. 일본은 왜 가톨릭을 탄압했을까. 영화에서 나가사키 수령 이노우에(이세이 오가카)는 로드리게스에게 말한다. "히라다의 전 총독에 대해 재미난 얘기가 돌더군. 첩이 네 명이었다고. 전부 미인이었는데, 질투심이 심해서 서로 안 싸우는 날이 없었어. 그래서 성 밖으로 쫓아냈지. 다시 평화가 찾아왔고." "아주 현명한 남자였군요." "바로 그 통치자가 일본이야. 첩들은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이고. 서로의 욕심이 결국에는 가정을 파괴했지. 자네도 그가 현명한 남자라고 했으니, 우리가 가톨릭을 박해하는 걸 이해하겠군."

영화 '사일런스' 스틸 컷

영화 '사일런스'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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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유신이 조선에 묻다'는 이 설명을 구체화한다. 메이지유신 전후의 일본 상황을 심층적으로 개괄 정리한 책이다. 우리 역사와의 연관성을 서술하며 올바른 역사를 직시하게 한다. 일본은 한때 가톨릭 포교를 용인했다. '바테렌 추방령'을 내린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1586년 3월 오사카성에서 예수회 일본 선교 총책임자인 가스파르 코엘료를 접견했다. 그해 5월4일에 예수회의 포교에 대한 허가증을 발급했다. 배경에는 조선과 명나라를 침공하려는 야심이 숨어있었다. 코엘료에게 전투 계획을 털어놓으면서 때가 되면 포르투갈 선박 두 척을 지원해달라고 요청했다. 코엘료는 찬성했다. 자신의 영향력이 미치는 규슈의 기리시탄 다이묘들과의 합동 작전을 제안했다. 권력자의 기분을 맞춰주면서 선교를 수월하게 하려는 목적이었다. 이는 거꾸로 규슈의 기리시탄 다이묘들 사이에서 예수회 선교사들이 생각 이상으로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도요토미가 파악하게 했다. 그해 7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진행된 도요토미의 규슈 정벌 또한 예수회에 대한 경각심을 더욱 굳히게 되는 계기가 됐다.
이 책은 다음과 같이 부연한다. "도요토미는 많은 사람들이 가톨릭으로 개종하는 과정에서 기리시탄 영주들이 매우 강압적이었다는 사실과 나가사키에서 노예무역이 이뤄지는 것이 자신의 권위를 실추시키고 반역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아울러 소와 말을 식용으로 도살한다는 사실도 그의 불교적 감성으로는 못마땅했다." 조 저널리스트는 도요토미가 규슈 정벌 뒤 후쿠오카를 찾으면서 코엘류의 푸스타 호를 확인한 사실에도 주목한다. "배를 상세하게 관찰하고 칭찬하면서 '이것은 틀림없이 군함'이라고 말했다. 포르투갈 전함을 갖고 싶다는 욕망과 배에 대한 공포심을 동시에 느낀 거다." 예수회 동인도 선교 총책임자였던 알렉산드로 발리냐노는 도요토미를 달래려고 조선 출병에 협력했다. 실제로 조선을 침략한 일본군 대부분은 가톨릭교 영주들이었다. 고니시 유키나가 등은 조선에서 6년이나 머물렀다. 그러나 예수회의 노력은 한시적일 수밖에 없었고, 훗날 잔혹한 기독교 탄압을 막지 못했다. 일본 전역에서 많은 기리시탄들이 피눈물을 흘리며 울부짖었다. 현명한 남자라고 자부했으나 제 살 깎기에 불과했던 셈이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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