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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tests] 내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가졌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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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교수는 2010년 7월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 『리카르두 레이스의 사망연도』를 설명하면서 ‘페르난두 페소아라는 인물의 독특한 삶을 다루고 있다’고 썼다. 그는 페소아가 제 이름이 아닌 다른 여러 이름으로 작품을 발표하면서 이름들 각각에 고유한 전기와 인격과 문체를 부여한 데서 특별함을 발견한다. 페소아가 자신을 여러 개의 인격으로 분화시켰다는 것이다. 페소아는 그 이름들을 ‘이명’(異名)이라고 불렀다.

“가명(pseudonym)은 제 정체를 감추고 제 목소리를 낼 때에 사용하나, 자기의 이름들은 저마다 다른 인격을 갖고 있으므로 이명(heteronym)이라 불러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정체성의 추구와는 반대되는 충동을 본다. 정체성(identity)이 ‘A=A’의 동일률에 집착한다면, 이명(heteronym)은 한 인격 내에 잠자는 상이한 가능성들을 현실화한다. 그것의 격률은 A=B=C=D=E, 즉 ‘너는 지금의 네가 아닌 세상의 다른 모든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진 교수의 뛰어난 안목을 빌려 페소아를 읽는 일은 문학과지성사에서 대산세계문학총서 시리즈로 낸 『내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가졌는지』를 감상하는 데도 유익하다. 이 책은 페소아의 시가집인데 본명으로 쓴 작품 여든한 편을 엮었다. 그가 죽은 뒤 남긴 트렁크에는 영어·포르투갈어·프랑스어로 쓴 시와 산문 3만여 장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이 중에 페소아가 생전에 제목을 정해 출판할 계획이었던 ‘시가집’에 관한 기록이 있다. 김한민 작가가 이 기록을 살펴 대표작들을 번역했다.

페소아는 1982년에 나온 산문집 『불안의 책』으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졌다. 2016년 4월 <아트인사이드>에 이 책의 리뷰를 쓴 안세영 에디터는 “『불안의 책』은 단순한 책이 아니라 혁명이며 부정이다”라고 한 리처드 제니스를 인용한다. 에디터는 이 책에서 아포리즘을 얻어내는데, ‘우리는 마주보고 있어도 서로를 보지 못한다’ ‘내 안의 모든 것은 항상 다른 무엇이 되려 한다’ ‘불안은 점점 커지면서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나는 포르투갈어로 쓰지 않는다’ 같은 것들이다.

『내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가졌는지』에는 포르투갈어로 창작을 시작한 초기의 작품 「키츠에게」에서부터 페소아가 스스로 “진정 페소아인 것, 더 내밀하게 페소아인 것”으로 평가한 「기울어진 비」까지 실렸다. ‘존재와 부재, 고정된 정체성에 대한 회의’ 등 그가 천착한 주제 외에도 ‘민족과 역사, 유년의 기억, 사랑과 성(性), 기존 종교에 대한 회의와 대안적 종교에 대한 관심, 새로운 문체와 형식 실험’ 등을 보여준다.
시인은 흉내 내는 자.
너무도 완벽하게 흉내 내서
고통까지 흉내 내기에 이른다
정말로 느끼는 고통까지도.
-「아우토프시코그라피아」 중에서


huh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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