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 모를 바다 기름 유출 사고 잇따라
목격자 없지만 유지문 추출, 대조 기법으로 범인 검거
해경 "자동화 프로그램 개발 중"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육지에선 과학수사대(CSI)가 지문(指紋) 감식으로 범인을 잡는다면, 바다에선 유지문(油指紋)으로 기름 유출범을 잡는다."
지난 4월 중순 부산 감천항에 원인 모를 기름 유출 사고가 연달아 발생했다. 누군가 쥐도 새도 모르게 3차례에 걸쳐 기름을 바다에 버린 것이다. 출동한 부산해양경찰서는 유출된 기름 방제를 마친 후 끈질긴 추적 끝에 러시아 선적 1085톤급 어선 A호가 범인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기름마다 생산 방식ㆍ지역 등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유지문(油指紋) 분석 기법을 활용해 수사에 나선 결과였다.
19일 해양경찰청에 따르면, 기름은 사람의 지문처럼 함유한 탄화수소가 원산지ㆍ정유 방식과 시기ㆍ유종ㆍ보관 상태 등에 따라 고유한 특성을 갖고 있다. 기름은 수천 종의 화합물로 되어 있는데, 원유(Crude oil)의 산지 및 생성 조건에 따라 화학적 특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기나 긴 세월 동안 걸쳐 만들어진 원유는 재료가 된 유기물의 조성비, 온도, 압력 등 다양한 조건 하에서 만들어진다. 따라서 서로 다른 화학적 구조를 갖게 된다. 언제 어디에서 정유가 이뤄지느냐, 급유시 탱크에 남아 있는 다른 기름과 얼마나 섞이느냐 등도 변수다.
이를 전문 용어로 '유지문'(油指紋·Oil Fingerprinting)이라고 부른다. 미국과 EU, 일본, 우리나라 등에선 이같은 유지문을 비교해 해양 오염 사고의 범인을 찾아내 책임을 추궁하는 '유지문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즉 해경은 바다에 원인 모를 기름이 떠있을 경우 성분을 분석해 '유지문'을 채취한다. 이후 오염 발생 전후 사고 해역 인근을 오간 선박들을 일일이 찾아가 연료탱크ㆍ폐유ㆍ선저폐수 등에서 채취한 기름과 분석해 일치하는 지 여부를 확인한다.
이에 따라 해경은 A호의 연료 탱크와 폐유 등 선박의 모든 탱크에서 시료를 채취해 정밀 분석에 들어갔다. 그런데 의외의 장소인 선박 평형수 탱크에서 채취한 시료의 유지문이 유출유와 동일하다는 것을 밝혀냈다. 경위를 조사해 보니, 선령 40년이 넘는 A호는 과거 선박 연료유를 선박 평형수 탱크에 적재해 사용한 적이 있었다. 특히 최근에 새로 들어온 선원이 이를 알지 못한 채 선박의 균형 유지 테스트를 하면서 기름과 뒤섞인 선박 평형수 약 7㎘를 배출했다.
지난 10월 충남 당진시 성구미포구 인근에서 발생한 기름 유출 사고도 마찬가지다. 목격자가 하나도 없는 사고였지만, 해경은 채취된 기름의 유지문을 분석한 결과 B-A 연료유를 사용하는 선저의 폐수로 판정됨에 따라 용의 선박을 19척으로 한정할 수 있었다. 특히 해상 작업중인 H호에서 기름냄새가 났다는 진술을 확보했고, 기관실내 연료유, 선저 폐수 등을 확보해 유사한 유지문을 확인했다. 그 결과를 갖고 추궁하자 해당 선박의 기관장은 4일 만에 기름 유출 사실을 털어 놨다. 선박 노후화로 선저폐수가 다량 발생하자 잠수펌프를 이용해 약 480ℓ를 바다로 불법 배출했다는 것이다.
해경은 이같은 유지문 분석 기법을 이용해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54건의 해양 오염 사고를 조사해 26건의 범행 선박을 밝혀 냈다. 올해에도 10월 말까지 14건 중 12건의 오염 원인 선박을 찾아냈다. 해경은 이를 위해 충남 천안 해양경찰연구센터, 4개 지방해양경찰청에 각각 분석팀ㆍ장비를 갖추고 있다. 기체크로마토그래프(GC) 등 7종 31점의 장비를 동원한다. 지난 3년간 연평균 2015건의 감식과 분석을 실시했다. 해경은 유지문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한편 2020년까지 기름 감식 자동화 프로그램과 현장용 분석 장비도 개발할 계획이다.
해경 관계자는 "유지문 분석은 자그마한 변수에도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어 정밀한 기술이 필요한 작업"이라며 "유지문 분석 결과를 포함해 항만 출입 기록, CCTV 녹화 내역 등을 종합적으로 활용해 해양오염 사고 행위자를 적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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