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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브 리뷰]클라라 주미 강 알레시오 백스 듀오 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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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산보다 수렴, 내면의 성숙을 드러내다

류태형 평론가

류태형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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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라 주미 강은 한국 클래식 음악계에서 하나의 현상이었다. 독일(만하임)에서 태어나 한국(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공부했고 일본(센다이)과 미국(인디애나폴리스)의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세계에서 한국으로 향하는 구심력과 한국에서 세계로 나아가는 원심력을 두루 갖춘 이 바이올리니스트의 존재는 그 자체로 한국이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시대의 증거였다. 연주자들 사이에 클라라 주미 강처럼 외국 이름과 한국 이름, 성 순으로 쓰는 이름이 유행하기도 했다.

클라라의 연주를 실제로 처음 본 건 2009년 4월 예술의전당에서였다. 서울국제음악콩쿠르 준결선에서 연주한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2번이었다. 낭만적인 색채와 적적하고 깊은 우수를 펼치는 스물 두 살 바이올리니스트가 이목을 끌었다. 큼직한 화폭에 여유 있게 그림을 그리듯 했던 클라라 주미 강은 결선에서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을 매끄럽고 노련하게 요리했고, 결국 우승을 거머쥐었다.
센다이와 인디애나폴리스 콩쿠르에서 최고의 성적을 거둔 2010년 그녀는 클래식 음악계의 떠오르는 별이었다. 2011년 한 해에만 60회의 연주회를 치렀다. 연주 시 엄청난 에너지를 발산하는 174cm의 큰 키와 시원시원한 동작은 동양인으로서 보기 드문 하드웨어였다. 솔로이스트로서 뿐만 아니라 다른 연주가나 연주단체와 협연할 때 밀고 당기는 앙상블에도 노련했다. 노부스 콰르텟과 멘델스존 8중주를 협연했을 때 클라라는 오이스트라흐를 연상시킬 만큼 강렬한 연주로 전체를 견인했다. 2016년에는 피아니스트 손열음과의 듀오 음반과 리사이틀로 실내악 삼매경에 빠졌다. 올해 여름 클라라는 평창대관령음악제에서는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악장을 맡았다. 자신을 내세우기보다는 함께 음악을 만들어나가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클라라는 신동이었다. 두 살 때 피아노로 음악을 시작했다. 성악가였던 부모님은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였던 클라라 슈만의 이름을 지어줬다. 산타클로스 복장을 한 아버지로부터 세 살 때 선물 받은 바이올린이 인생을 바꿨다. 다섯 살 때 함부르크에서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했고 여섯 살 때에는 독일 ‘디 차이트(Die Zeit)’지에 신동으로 소개됐다. 아홉 살 때에는 텔덱 레이블에서 첫 녹읍을 했다.

10대 초반에는 안네 소피 무터를 롤 모델로 삼고 열심히 연주했다. 그 무렵 열두 살 때 학교에서 농구를 하다 왼쪽 새끼손가락이 부러졌다. 수술을 두 번 받고 회복했지만 바렌보임이 지휘한 시카고 심포니와 시벨리우스 협주곡 협연은 놓칠 수밖에 없었다.
2015년 클라라는 차이콥스키 콩쿠르에 출전했다. 20대를 마감하며 후회 없이 도전하고 싶었다. 우승이 아닌 4위였지만 설 수 있는 무대를 늘린 좋은 결과였다. 게르기예프, 기돈 크레머로부터 좋은 협연 제의가 계속 들어왔다.
악전고투로 따낸 입상이었다. 근육에 심각한 무리가 와서 악기를 못 들 정도였다. 결선 연주 영상을 보면 왼손에 보라색 멍 자국이 잡힌다. 진통제 다섯 알을 먹고 모차르트 협주곡을 연주한 뒤 모스크바 한방병원에서 몽골인 의사에게 침을 맞고 사혈을 한 뒤 조금 나아졌다.

10월 14일 일요일 오후 일요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로비가 붐볐다. 클라라가 2년 만에 여는 독주회는 피아니스트 알레시오 백스와 함께였다. 조성진이 1위 했던 하마마츠 콩쿠르와 김선욱이 우승했던 리즈 콩쿠르에서 모두 우승한 경력의 소유자다.

클라라 주미 강(왼쪽)과 알레시오 백스. 사진=김윤배, 에투알클래식 제공

클라라 주미 강(왼쪽)과 알레시오 백스. 사진=김윤배, 에투알클래식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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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검정 드레스 차림의 클라라와 정장에 일반 넥타이를 한 백스가 등장했다. 첫 곡 드뷔시의 바이올린 소나타에서 클라라는 몸을 떨며 곡에 결을 부여했다. 넉넉한 힘으로 매듭을 짓고 활로 구분해 의미를 부여했다. 천천히 지속하는 보잉에서 고음이 산뜻했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이 공동구역을 유지하며 서로에게 녹아들었다. 열정적인 상승 뒤에 다시 한 음을 몸을 움직여 분할하는 클라라를 보며 손가락 뿐 아니라 바이올리니스트의 온몸이 하나의 악기임을 깨달았다. 2악장에서 곡은 익살스런 표정으로 바뀌었다. 바이올린 피치카토와 피아노가 숨바꼭질 하듯 했고 큰 스케일에 잰걸음도 여유가 있었다. 3악장에서 클라라의 운궁은 적극적이고 힘찼다. 발끝을 들고 앞으로 쏟아질 듯 공격적이었다. 백스의 피아노는 청신하면서도 웅숭깊었다.

부조니 소나타 2번은 이날 공연의 백미였다. 피아노가 곡을 시작하자 바이올린은 물에 잠기듯 무거운 발걸음을 이어갔다. 클라라가 끊기지 않는 보잉에 이어 폐부를 찌르듯 강렬하게 연주하더니 짧은 2악장 프레스토에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씩씩하고 거침없는 비르투오시티 속에 피아노의 존재감이 조약돌처럼 뚜렷했다. 물에 잠기듯 고요함 속에 곡은 천천히 반복하고 상승했다. 마지막 악장에서 영적인 그림자가 드리웠고 내면의 빛이 번득였다. 마지막에 성당의 종소리처럼 울리던 백스의 피아노는 잊지 못할 음악 풍경을 만들어냈다. 독일의 영성과 이탈리아의 색채가 두 연주자의 손끝에서 어우러져 완성되는 모습이었다.

이자이 ‘슬픈 시’ 역시 부조니와 마찬가지로 자주 들을 수 있는 곡이 아니었다. 도입부에서 클라라의 심장이 바이올린에 연결된 듯 느껴졌다. 격정의 운궁에도 곡의 수위가 깊어, 차분한 울림이 만들어졌다. 피아노와 어우러지는 변칙 조현된 저음현이 귓가에 파고들었다. 여기서도 클라라는 온몸으로 음악의 결을 표현했다. 강렬하고 밀도 있는 고음으로 맺힘과 풀림, 상승과 하강을 반복했다. 쇼송의 ‘시곡’을 예견하는 부분이 간절했다. 떨리며 하강하는 바이올린에서 모든 것을 연소시킨 뒤의 헛헛함이 느껴졌다.

프로그램의 마지막 곡은 프랑크 소나타. 최근 부쩍 많이 들을 수 있었던 곡이었다. 직접 본 공연만 꼽아봐도 정경화, 김봄소리, 콜야 블라허, 네만야 라두로비치 등이 모두 이 곡을 연주했다. 곡을 시작하는 백스의 피아노에서 희망과 긍정이 느껴졌다. 명징하지만 달콤하지 않아서 믿음이 갔다. 클라라는 힘을 모아 한 음 한 음을 냈고 백스는 여유를 둔 루바토로 명료한 소리를 냈다. 클라라는 자의적인 표현을 피하고 자애로운 분위기를 유지하며 곡을 연착륙시켰다. 뜸 들이지 않는 진행 속에 인상적인 비브라토로 1악장을 마쳤다. 2악장은 격렬하면서도 단정한 백스의 피아노 뒤에 약간 거칠어진 클라라의 운궁이 그림자로 깔렸다. 고음과 중음이 사려 깊었고 반복하는 부분에서 약간의 온도차를 가져갔는데, 절규하던 소프라노가 내뱉는 저음 같은 소리를 클라라의 바이올린에서 들을 수 있었다. 3악장은 진공상태 같은 먹먹함을 자아냈고 바이올린의 고음이 묵직했다. 강렬한 흐름속에 백열적인 바이올린이 관악기같이 균질하고 밀도 높은 소리를 만들어냈다. 클라이맥스에서도 흩어지지 않고 결이 유지됐다. 돌림노래로 시작된 4악장은 약간 밝은 색채감에 충분하게 넉넉한 템포로 음표를 소화했다. 격정에 휘발되기 쉬운 마지막 부분에서도 균형을 유지한 점이 특히 좋았다.

클라라와 백스는 앙코르로 글룩의 ‘멜로디’를 연주했다. 백스의 피아노에서 바이올린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는 마음 같은 배려가 엿보였다. 두 번째 앙코르는 파가니니 바이올린 협주곡 2번 중 라 캄파넬라 악장이었다, 클라라는 파가니니 특유의 소름 돋는 기교적인 부분도 다독이며 편안하게 연주했다. 마지막 앙코르는 드뷔시 ‘아름다운 저녁’이었다. 프리즘같은 피아노의 색채감과 바이올린의 하강하는 반음이 저녁노을처럼 내려앉는 연주였다. 긴 지속음이 곧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일요일 저녁의 아쉬움과 오버랩됐다.

클라라는 연주회마다 달라진 모습을 보여준다. 이번에는 발산하는 쇼피스보다는 고요하게 수렴하며 오랫동안 여운이 남는 곡들을 준비했다. 그녀의 내면이 성숙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던 리사이틀이었다. 클라라와 백스의 합도 기대 이상이었다. 이들의 연주로 다른 곡들을 듣고 싶어졌다.

류태형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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