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이종길의 영화읽기]인간 본성으로 무중력에 저항하다

뉴스듣기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RSS

제임스 그레이 감독 영화 '애드 아스트라'

[이종길의 영화읽기]인간 본성으로 무중력에 저항하다
AD
원본보기 아이콘


"이건 기밀 심리진단입니다. 당신의 현재 심리상태는 어떤가요?" "아주 평온합니다." 영화 '애드 아스트라(Ad Astra)'에서 가장 많이 오가는 대화 내용이다.


로이 맥브라이드(브래드 피트)는 죽을 위기를 간신히 넘기고도 심박수가 80회를 넘지 않는다. 그는 생각한다. '나는 왜 아무 느낌이 없지?' 제임스 그레이 감독은 무중력으로 표현한다. 로이는 우주나 우주선 내부를 둥둥 떠다닌다. 표정은 늘 변함이 없다. 해적과 유인원에게 공격당해도 침착하다. 아버지 클리퍼드 맥브라이드(토미 리 존스)가 미친 영향이다. 세상이 영웅으로 추앙하는 클리퍼드는 '리마 프로젝트'를 완수하기 위해 아내와 아들까지 저버린다. 리마 프로젝트란 우주에서 지적 생명체를 찾는 임무다.

로이는 우주비행사가 된다. 아버지의 오랜 친구 프루이트(도널드 서덜랜드)는 놀라워한다. "아버지를 똑 닮았군." 로이는 해왕성에서 불어오는 전기폭풍 '써지'로부터 인류를 구하기 위해 화성으로 향한다. 아버지를 설득하는 게 임무다. 아버지가 써지를 일으키는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로이는 생사가 불투명한 아버지에게 메시지를 잇따라 보내며 분노와 울분의 껍질을 조금씩 벗겨낸다. 아버지와 함께 봤던 흑백 뮤지컬 영화를 떠올리며 그리움에 젖는다. "아버지, 다시 만나길 빌어요. 사랑하는 아들 로이."


[이종길의 영화읽기]인간 본성으로 무중력에 저항하다 원본보기 아이콘


흑백영화는 콘트라스트와 그림자를 강조함으로써 어둡고 불길한 이미지가 전해진다. 다만 뮤지컬 요소(춤ㆍ노래)를 삽입하면 상반된 감정까지 유발할 수 있다. 그레이 감독은 이 특징을 살리는 데 주력한다. 로이의 그늘진 삶에서 천천히 명상적 선율을 찾아간다. 빛과 어둠을 아름답게 조명하면서 서정적 리듬이 부각되도록 만든다. 이렇게 해서 단순하고 상투적인 이야기는 묘한 흡입력을 지닌다.


로이가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은 영화 '퍼스트맨'(2018)과 많이 닮았다. '퍼스트맨'의 데이미언 셔젤 감독은 닐 암스트롱(라이언 고슬링)을 미국의 영웅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그저 맡은 일을 묵묵히 수행하는 우주비행사로 그린다. 닐은 계속된 여정으로 평범한 일상을 누리지 못한다. 딸과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동료들을 잇따라 잃어 마음마저 공허하다. 인류 최초의 지구 궤도상 우주선 도킹에 성공한 뒤에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빛나는 훈장, 대중의 찬사도 위로가 되지 못한다. 그는 슬퍼하거나 분노하지 않는다. 이는 달로 떠나는 아폴로 11호 프로젝트를 앞두고 아내(클레어 포이)와 나누는 대화에서도 드러난다.

"닐, 아이들한테 말해. 내 말 들려? 말하라니까 뭐 하는 거야?" "일해야 해." "하지 마. 짐 좀 그만 싸라고. 못 돌아올 확률이 얼마나 돼? 애들이 다시 당신을 못 볼 확률 말야." "정확한 수치로는 표현 못 해."


[이종길의 영화읽기]인간 본성으로 무중력에 저항하다 원본보기 아이콘


닐은 인류 최초로 달 표면에 발 디딘 뒤에야 솔직한 감정을 드러낸다. 딸이 찼던 팔찌를 허공에 띄워 보내며 울먹인다. 그의 감정과 무관한 중계방송 해설이 흘러나온다. "이 감동은 결코 설명이 안 될 겁니다. (중략)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세계를 들여다본 거죠."


닐은 훗날 "이것은 인간에게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라고 말했다. 셔젤 감독은 전자에 주목한다. 우주라는 무한한 공간에서 인지하는 깊은 상실감,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기약하는 용기다.


닐과 로이는 자아를 회복하려고 우주선에 오른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우주라는 암흑 또는 무중력 공간에서 스스로를 숨기고 싶어했다. 이들이 정처 없이 표류하지 않은 건 제한적인 공간에서 인간 본성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도전에 직면하려는 자세도, 관계의 가치를 인식하는 마음도 인간이 본디 가진 성질이다. 우주로 가지 않아도 느낄 수 있다. 암울한 인생이라도 가슴에 별 하나쯤은 있게 마련이므로. '애드 아스트'는 '별을 향하여'라는 뜻의 라틴어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본 뉴스

새로보기

이슈 PICK

  • 6년 만에 솔로 데뷔…(여자)아이들 우기, 앨범 선주문 50만장 "편파방송으로 명예훼손" 어트랙트, SBS '그알' 제작진 고소 강릉 해안도로에 정체모를 빨간색 외제차…"여기서 사진 찍으라고?"

    #국내이슈

  • 美대학 ‘친팔 시위’ 격화…네타냐후 “반유대주의 폭동” "죽음이 아니라 자유 위한 것"…전신마비 변호사 페루서 첫 안락사 "푸바오 잘 지내요" 영상 또 공개…공식 데뷔 빨라지나

    #해외이슈

  • [포토] 정교한 3D 프린팅의 세계 [포토] '그날의 기억' [이미지 다이어리] 그곳에 목련이 필 줄 알았다.

    #포토PICK

  • 제네시스, 中서 '고성능 G80 EV 콘셉트카' 세계 최초 공개 "쓰임새는 고객이 정한다" 현대차가 제시하는 미래 상용차 미리보니 매끈한 뒤태로 600㎞ 달린다…쿠페형 폴스타4 6월 출시

    #CAR라이프

  • [뉴스속 인물]하이브에 반기 든 '뉴진스의 엄마' 민희진 [뉴스속 용어]뉴스페이스 신호탄, '초소형 군집위성' [뉴스속 용어]日 정치인 '야스쿠니신사' 집단 참배…한·중 항의

    #뉴스속OO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top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