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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그랩'의 성공, 한국의 좌고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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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환 국제부장

[아시아경제 정두환기자] 지난달 초 기업공개(IPO)에 나선 세계 최대 차량공유업체 우버(Uber)를 둘러싸고 월가에서는 이러저런 말이 많았다. 우버가 정한 공모가는 주당 45달러. 공모가 기준 기업가치는 820억달러(약 97조3300억원)였다. 한때 1200억달러에 달할 것이라는 시장의 예상과는 한참 멀었다. 하지만 이같이 한참 몸을 낮춘 공모가에도 불구하고 우버는 지난 10일 상장 첫날 7.6%의 주가 하락을 겪었다. 외신들에 따르면 미 IPO 역사상 첫날 주가 하락폭이 가장 컸던 기업이라고 한다.


앞서 지난 3월29일 나스닥에 화려하게 입성했던 세계 2위 차량공유업체 리프트(Lyft) 역시 나스닥 상장 둘째 날 주가가 20%나 빠지는 굴욕을 맛봤다.

우버와 리프트의 이 같은 굴욕을 어떻게 봐야 할까. 주요 외신들은 당장 돈을 못벌고 있다는 점을 꼽고 있다. 지난해 두 회사의 영업손실을 합치면 40억달러에 달할 정도니 당연히 의구심을 가질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그에 못지 않은 것은 우리가 신산업으로 여기고 있는 차량공유서비스가 글로벌시장에서는 이미 블루오션이 아닌 치열한 경쟁의 영역에 들어섰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요즘 동남아시아로 여행이나 출장을 다녀온 사람들이 가장 먼저 꺼내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그랩(Grab)이라는 차량공유서비스다. 택시 얘기를 꺼내면 구닥다리 얘기 듣기 십상이다.


동남아는 전 세계 차량공유서비스시장에서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우버가 유독 힘 한 번 못 쓰고 사업을 접은 곳이기도 하다. 우버의 동남아 진출을 가로막은 것은 외국 기업의 진출이나 자국 택시사업의 몰락을 우려한 해당 정부의 규제가 아니었다. 바로 '그랩'이라는 강력한 토종 경쟁자였다. 우버는 지난해 동남아 8개국 사업부문을 후발업체인 그랩에 넘겨주며 이 시장에서 철수해야 했다.

그랩은 미국 하버드대 출신의 앤서니 탄이 말레이시아에서 2012년 설립한 콜택시 애플리케이션 '마이텍시(MyTeksi)'에서 출발한 차량공유서비스업체다. 그랩의 주무대는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 동남아 8개국이다. 이 일대에서 그랩은 700만명의 운전자를 확보하며 동남아 최대의 유니콘(상장 전 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인 업체)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랩의 기업가치는 140억달러에 달한다. 소프트뱅크, 도요타, 디디추싱 등 일본, 중국 기업은 물론 현대자동차 등 한국 기업들도 이 업체에 투자했을 정도다.


그랩의 성공 배경은 무엇일까. 현지화, 운전자와의 상생전략 등이 꼽히지만 빼놓을 수 없는 게 있다. 바로 말레이시아 정부의 정책 의지다. 그랩 역시 다른 공유서비스 업체들이 그렇듯 서비스 초기 기존 택시업계의 강렬한 저항에 부딪혔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말레이시아 정부의 입장은 명확했다. 소비자 편익이 최우선의 가치며 공유서비스가 세계적 흐름이라는 것이다.

그랩의 성공은 말레이시아에 'Why not me'로 대표되는 창업 정신을 심었다. 그랩의 성공에 힘입어 말레이시아는 동남아 창업의 메카로 떠오르며 주변의 젊은 창업 인재들을 끌어모으고 있다고 한다.


한국투자증권에 따르면 지난해에만 97개의 유니콘이 탄생했다고 한다. 평균 3.8일에 한 개꼴로 유니콘이 등장한 셈이다. 첨단 기술, 신산업에서 중국의 이 같은 굴기가 14억 소비자의 힘이거나 세계 경제를 주무르는 차이나머니 덕일 수도 있지만 여기에 중국 정부의 기술굴기가 큰 밑바탕이 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미국이 국가 안보까지 내세우며 중국 최대 통신장비업체 화웨이를 퇴출시키려고 기를 써야 할 만큼 중국의 기술 굴기는 전 세계를 위협하고 있다. 이제 우리의 경쟁 상대로 보기에도 버거울 정도다. 여기에 그동안 우리가 단순한 상품시장으로 여겨온 동남아마저 경쟁자로 부상하고 있다.


새로운 기술, 신산업이 성장할 수 있는 토대는 거창한 지원책이나 정교한 제도의 틀이 아니다.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운동장만 만들어 놓으면 된다. 그 안에서 무수한 도전과 실패, 시행착오가 반복되고 이 과정에서 혁신이 이뤄진다. 자금? 걱정할 필요없다. 새로운 기술, 서비스에는 기업이, 자본이 기가 막히게 냄새를 맡는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아니면 여전히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좌고우면하며 주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최근 한 금융기관장과 승차공유기업 대표 간의 '무례' 논쟁은 씁쓸하기만 하다.




정두환 기자 dhjung6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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