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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counter]시, 소리의 질감-낭송 플랫폼 퍼소나

최종수정 2019.05.24 10:50 기사입력 2019.05.24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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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아 시인

정한아 시인

한국은 정말 이상한 나라다. 시를 쓰는 내가 체감하기에도 시는 아무래도 비인기 장르인 것 같은데 서점 판매량을 보면 또 어지간히 팔리고 있고, 소설 초판이 완전 판매되기 힘든 것과 달리 시집은 또 어지간하면 1쇄는 다 팔린다고들 한다. 해외에서 유학을 하거나 체류하다 들어온 친구나 지인들에게 들어보면 한국처럼 동시대 시인들이 써낸 시들이 ‘시선’이나 ‘시인선’으로 묶이고 시리즈로 판매되는 일은 매우 드물다고도 한다. 시인들 사이에는 전국에 자칭 타칭 시인이 3만 명에서 5만 명은 될 거라는 오래된 농담이 있다. 한 진보정당 당원 수에 맞먹는 숫자이고 대한성공회 신도 수와 맞먹는 숫자다.


뉴스 기사들을 검색해보면 시가 갑자기 많이 팔리기 시작한 데는 몇 가지 요인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매체의 영향이 두드러지는 것 같다. 아마도 첫 번째 요인은 아이돌셀러나 미디어셀러라는 말이 가리키듯 시가 대중 매체에 노출되면서 새삼스럽게 관심이 쏟아지는 경우일 테다. 혹은 인기 있는 드라마에 삽입된 시 구절에 감동 받거나 좋아하는 연예인의 독서 습관을 따라가는 경우도 있다. 중년 이상의 ‘진지한 시 독자’의 과거를 가진 사람이라면 이런 경우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볼 사람이 없지 않겠지만 장르와 분야를 막론하고 책의 형태로 무언가를 읽어서 향유한다는 것 자체가 희귀해진 디지털 시대에 다른 무엇보다 시를 찾아 읽게 된다는 것은 어떤 경로를 거쳤건 흥미로운 현상임에 틀림없다.


두 번째 요인은 시를 접하고 향유하는 매체 자체의 변화라 할 수 있겠다. 온라인 세계에서 강력한 지배력을 가진 몇 가지 유형의 SNS는 그 접촉 범위나 메시지 허용량에 있어 약간씩은 차이가 있지만 대개 짧은 텍스트의 전달을 기본형식으로 한다. 쓰는 입장에서 엄지로 긴 글을 쓰기도 힘든 일이거니와 읽는 사람에게도 작은 액정화면을 들여다보며 안구 노동을 심화하기보다는 시처럼 짧고 압축적인 메시지를 다양하게 읽는 것이 보다 용이하고 여러모로 경제적이다.


이런 문자 위주의 매체 변화 말고도 팟캐스트나 오디오 클립을 통한 ‘듣는’ 콘텐츠로서의 시에 대한 각성이 시의 인기를 견인하는 또 하나의 요인인 것 같다. 내 기억에 시 낭독회 문화는 10여 년 전부터 꾸준히 성장해 왔다. 2천 년대 중반만 해도 일종의 실험적인 무대로서 젊은 시인들의 시 낭독회가 작은 공연 형식으로 드문드문 열렸다면, 불과 몇 년 후에 윤동주 시 암송대회처럼 일반인들이 참여하여 외고 읊는 공식 행사들이 생기고 각 지역 문화재단이나 주요 시 출판사들이 주최하는 낭독회와 더불어 예기치 않은 정치적/정책적 퇴행에 대항하는 문학 ‘행동’으로서 <불킨 낭독회>나 <304낭독회>처럼 시인들이 자발적으로 개최하는 낭독회들도 지금의 문화적 뉘앙스를 만드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을 것 같다. 적어도 시인들 사이에서는 그 영향이 결코 작지 않았다.


시 낭송 플랫폼 퍼소나 초기화면

시 낭송 플랫폼 퍼소나 초기화면

한편, 시 낭독 팟캐스트나 어플리케이션은 장황하고 정제되지 않은 무성한 입말들 사이에서 소리와 침묵의 적절한 조화와 응집된 정서로 이용자들을 꾸준히 늘려가고 있다. 근래 들어서는 낭독 소모임들도 곳곳에 생기고 있다고 하니 자기 목소리로 읽고 동시에 귀로 들으며 자기 자신과 교감하는 동시에 청중과 교감하는 집중된 감각적 정서 활동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아 간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라 하겠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 서정시가 문학이 아니라 음악의 한 갈래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시의 운율이나 소리의 질감이 주는 특유의 정서적 인지적 반응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근대 이후 다른 무엇보다도 시각이 점유하고 있던 지배력을 생각하면 꾸준히 시각중심주의적인 방향으로 변화해온 듯 보였던 시가 다시 소리의 세계로 환원되고 있다는 사실은 ‘너무 많이 보는’ 우리 동시대인들의 과부하 상태에 이른 시각이 다른 감각에 대한 집중을 통해 휴식을 꾀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해도 무방할 것이다.


게다가 시인들이 자기 자신의 목소리로 자기 시를 낭독할 때 그 각각의 개성적인 어조와 목소리에서 느낄 수 있는 개성과 특유의 뉘앙스는 특별히 우리를 개별적인 시의 매우 섬세하고 구체적인 향유로 이끌어가는 힘이 있는 듯하다. 시의 음성적 자질에 꾸준히 주목해온 우리 문단의 한 평론가가 필생의 희원을 걸고 선보이는 시 낭송 플랫폼 퍼소나(Per Sonar, https://www.personar.co.kr)에서는 정현종, 황인숙 같은 우리 시단의 거목에서부터 구현우, 정다운 같은 젊은 시인들에 이르기까지 50여 명의 우리 동시대 시인들이 육성으로 낭독한 시인들 자신의 시를 들을 수 있다. 눈으로 읽을 때에는 독자의 경험과 상상으로만 추체험되던 시가 그 생산자들의 직접적인 목소리로 발성된 것을 들을 때에는 그 의미의 살갗을 만지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하기는, 청각은 고막을 때리는 진동으로 비롯되니까 엄밀히 따지자면 떨어져 있는 존재가 보내는 진동으로 두드려지는 섬세한 촉각이라고도 할 수 있을 테다. 사랑이 본령인 시의 경우라면 더욱 더.


정한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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