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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우리가 버려야 할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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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닝썬 게이트의 열기가 좀처럼 식을 줄 모른다.


연예계와 공권력의 유착 의혹에 마약과 성매매를 둘러싼 의혹, 성행위 몰래카메라 촬영을 넘어 이를 공유하는 일부 연예인들의 비뚤어진 성의식에 이르기까지. 한마디로 연예계의 어두운 민낯을 송두리째 보여주는 것만 같다. 잘나가던 정상급 가수가 이미 두 명이나 버닝썬 게이트의 불길에 연예계를 떠났고, 사과의 말로는 부족해 팬들로부터 "팀을 떠나라"는 압력을 받는 가수도 있다. 그간 '반듯한' K팝 스타들의 외양에 매료돼 있던 해외 팬들도 실망한 이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K팝을 이끄는 스타들은 아이돌이다. '우상'으로 번역되는 '아이돌'의 사전적 정의는 '맹목적인 인기를 끌거나 숭배되는 대상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이 사전적 정의 가운데 '인위적으로 만들어 신처럼 떠받드는 신의 형상'이라는 풀이도 있으니 아이돌 가수란 '맹목적인 인기를 끌게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뮤지션'이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성싶다.


이 사건을 계기로 연예인의 특권 의식에 대한 비판도 나오고, 아이돌 그룹을 키워내는 기획사들의 인성 교육에 대한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공동 화장실에 가면 몰래카메라가 있는지부터 살필 정도로 '몰카 공포'에 떠는 여성들의 불안 의식이 결코 과장이 아니며, 남성들끼리 어울리는 세상에서는 여성 폄하가 여전한 것이 우리 사회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버닝썬 게이트가 우리 사회에서 영원히 추방될 것 같지는 않다. 아무리 대통령이 '경찰의 명운을 걸고' 한 점의 의혹도 없이 수사하라고 해도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처럼 시간이 흐르면 또다시 어딘가에서 충돌사고가 일어날 것 같은 것은 비단 나만의 기우는 아닐 것이다.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

나는 이제라도 우리 사회가 성공의 방정식을 새로 써야 한다고 본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이란 물질적인 부를 이룬 이로 자리매김됐다. 더욱이 적은 나이에 큰돈을 번 이는 속칭 '엄친아'가 돼 모든 이의 부러움의 대상이 됐다. 돈은 필요한 곳에 쓰기 위해 버는 것임에도 돈 버는 것 자체가 목적으로 변해버렸다. 이에 따라 성공의 방정식도 달라졌다. 과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결과가 중요한 것으로 대체됐다. 살아온 과정이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 하더라도, 많은 이를 앞지를 수 있을 만큼 물질적 부를 이루지 못한 이들은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 축에 끼지 못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지난날 록 밴드들은 노래를 계속하기 위해 필요한 돈을 벌려고 클럽에서 공연했지만(송골매 배철수씨의 말), 지금의 아이돌 가운데 노래만을 계속하기 위해 세계 무대를 넘나드는 이들은 거의 없다. 이제 그들은 청년 재벌을 꿈꾸며 무대에 선다. 그 꿈을 안고 힘든 연습생 시절을 견뎌내고, 숨 가쁘게 몰아치는 일정을 소화하며, 어떻게든 치열한 경쟁의 세계에서 살아남아 자신의 이름을 알릴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한다. 그리고 마침내 스타가 되면, 자신이 직접 하든 이름만 빌려주든 간에 사업의 세계로 뛰어든다. 돈을, 막대한 돈을 벌기 위해. 그게 모두가 인정하는 '성공'이니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버는 일은 결코 비난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성공=돈'이라는 단일 등식은 위험하다. 과정에 대한 질문은 생략한 채 물질적 부를 성공으로 가르쳐온 사회에서 우리가 잃은 것은 존경이요, 잊어버린 것은 인간으로서의 수치심이다. 버닝썬 게이트는 그간 우리 사회가 알게 모르게 주입해온 이런 성공의 방정식이 잉태한 결과물이다. 돈으로 가늠되는 성공이라면, 차라리 버리는 것이 낫다.


홍은희 명지대 디지털미디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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