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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정치적 근본주의'의 유혹과 모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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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는 일이다. 왜 우리는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우려 하지 않을까? 어찌하여 아직도 역사의 오류와 실패 그리고 참담한 비극을 반복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이런 의문들은 오늘날의 정치적 상황에서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국민의 건전한 상식과 교양에서 비롯된다.


현대 정치사는 유토피아적인 정치적 이념과 모략만으로는 국민을 더 이상 설득할 수 없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다. 정치적 이념이란 언제나 체감할 수 있는 현실 적합성이 있어야만 국민에게 신뢰를 주고 희망을 약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반시대적인 낡은 정치적 이념은 이론적으로는 '당신들의 유토피아'는 만들 수 있을지 몰라도, 구체적인 현실에서는 '우리의 디스토피아'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각종 정치적 이념의 온상인 '정치적 근본주의'의 유령이 출몰해 작금의 한국 사회를 극단적인 분열로 내몰고 있다. 여야 할 것 없이 저 근본주의 유령의 덫에 갇혀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대개 특정 이념에 함몰된 근본주의적 진영 논리에 묶여 구체적인 현실에서 도피하려는 유혹에 쉽게 빠진다. 특정 정치적 이념이 지닌 장밋빛 유혹과 이분법적 정치 논리의 타성 때문이다. 정치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는 근본주의를 "자기 자신의 신념이나 근거가 합리적으로 수용되기 어려울 때조차도 그러한 신념이나 근거를 정치적 주장으로 자리매김시키려는 특이한 사고방식이나 고집스러운 태도"로 정의한다.


정치적 근본주의의 유혹이란 낭만적 유토피아주의, 오만한 확신주의, 정파적 코드주의, 절대적 무오류의 편집증에로의 확증편향이다. 또한 그것은 '적과 동지의 이분법' '희생양 만들기' '타자의 적대화' '적 발명하기'를 통해 생존한다. 정치적 근본주의자들의 모략이란 적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아무런 적이 없을 때는 적을 '발명'해내는 일이다. 따라서 자신들이 근본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거부나 부정은 적대적 모순 내지 절대 악으로 간주한다.


수많은 정권이 자기네의 이념을 내밀며 정체성과 정당성을 주장하면서 타자들을 적대시해왔다. 지금도 이런 방식의 싸움은 색깔론, 네거티브 전략, 적폐 청산, '극혐'의 이름으로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정치가 할 일은 이념적 차이를 이유로 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금ㆍ여기의 현실적 상황에서 '이기적인 자유'나 '잔인한 정의'보다는 국민을 위한 정당한 '정치의 도리'가 무엇인지를 함께 밝혀나가는 것이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항상 있어 왔다. 특정한 신앙이나 신념을 중시하는 종교인이나 사상가들은 현실을 이상에 맞춘다. 하지만 정치가는 이상을 현실에 맞출 수 있어야 한다. 국민과 나라는 결코 각자의 정치적 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실험 수단이 아니다. 모름지기 정치적 이념은 당대의 자연스러운 민심이나 당파성 없는 국민의 마음을 결코 앞서서는 안 된다.


이제 정치는 근본주의의 토대인 적과 동지의 이분법을 벗어나 평범한 국민의 마음의 결을 따라 '상생과 협치의 논리'를 모색해야 한다. 모름지기 국민이 염원하는 '민주적 공론의 광장'에서는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내세우면서도 남의 생각과 주장이 들어설 자리를 비워두는 상호 존중과 화이부동의 정치 문화가 요청된다. 우리가 바라는 미래의 성숙한 세상이란 진보와 보수 그리고 중도가 모두 제 색깔을 당당히 드러내면서도 합리적 숙의와 관용을 통해 차이를 품어주는 상생과 공존을 추구할 때 가능할 것이다.


강학순 안양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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