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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낙규의 Defence Club]악화일로 한·일관계 해법 없나

최종수정 2019.02.13 06:11 기사입력 2019.02.13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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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AP연합뉴스]

[이미지출처=AP연합뉴스]



[아시아경제 양낙규 기자]악화일로에 빠진 한일관계가 좀처럼 풀리지 않고 있다. 올해 일본에서 개최되는 일한ㆍ한일 협력위원회 설립 55주년 행사를 앞두고 있지만 양국의 신경전은 여전하다.


일본 정부는 '초계기 위협비행-레이더 조사(照射ㆍ비춤) 갈등'과 관련한 조치로 한국에 해상자위대 호위함 '이즈모'를 파견하려던 계획을 취소하기도 했다. 이에 누카가 후쿠시로(額賀福志郞) 일한의원연맹 회장이 군사 공방으로까지 번진 두 나라 간 갈등의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극비리에 방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은 우리에게 여전히 '가깝고도 먼 나라'다. 35년간 일제 식민지배의 아픈 역사를 뒤로하고 1965년 6월22일 한일협정에 사인함으로써 새로운 미래로 출발했다. 한일은 6ㆍ25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0월 예비교섭을 시작으로 14년간의 '마라톤협상' 끝에 국교정상화를 이뤄낸 셈이다. 하지만 잊을만하면 터져 나오는 일본 지도급 인사들의 망언과 퇴행적 과거사 인식, 독도 도발 등으로 상처는 다시 덧나고, 이것이 한일관계의 발목을 잡는 악순환이 반복돼왔다.


일각에서는 과거사 문제를 깔끔히 정리하지 못한 것이 현재까지 이어지는 갈등의 씨앗이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여기에 일본 지도자들의 왜곡된 역사인식,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징용 문제,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등 갈등 전선이 곳곳에서 형성됐다.


역대 우리 정부는 정권 초반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적극적 행보를 보였지만 이들 암초에 여지없이 걸려 '경색 국면'을 다음 정부에 물려주는 행태가 되풀이됐다. '굴욕외교'라는 국내의 거센 비판에도 조국 근대화를 위해 일본과 손을 잡았던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는 일본 한복판에서의 중앙정보부에 의한 '김대중 납치사건'(1973년), 재일 한국인 문세광에 의한 대통령 저격미수사건(1975년) 등으로 한일관계는 큰 위기를 맞기도 했다. 특히 문세광 사건 당시에는 '단교' 직전까지의 위기를 맞기도 했다.

전두환 정권 시절인 1982년에는 일제의 침략을 '진출'로, 3ㆍ1 운동을 '폭동'으로 표현한 일본의 고교 역사교과서 문제로 외교적 마찰을 빚었다. 노태우 정부 때는 민주화 바람에 힘입어 과거사 청산요구가 거세졌고, 특히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표면화됐다. 김영삼 정부 때는 '고노담화'(1993년)와 '무라야마 담화'(1995년)라는 적지 않은 성과를 거뒀지만 "식민지 시대에 일본이 한국에 좋은 일도 했다"(에토 다카미ㆍ江藤隆美 총무처장관) 등의 망언이 잇따르면서 김영삼 대통령이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고 강력히 반발하기도 했다.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이끌어낸 김대중 정부시대에는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과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 등이 갈등의 요소가 됐고, 노무현 정부 때는 일본 시마네현의 '다케시마의 날' 조례안 조정 등 독도 도발과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 역사교과서 왜곡 등의 파동을 겪었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2011년12월 교토에서 노다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로 정면 충돌했고, 급기야 이듬해 8월 이 대통령의 전격적인 독도 방문으로 한일관계는 완전히 얼어붙었다.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총리의 한일관계는 국교정상화 반세기의 역사에서 최악의 수준이었다. 한일 정상이 2013년초와 2012년말 각각 취임한 이후 다자회의에서는 몇 차례 얼굴을 맞댈 기회를 가졌지만 양자 차원의 정상회담은 한 번도 열지 못했다.


물론 일본 지도자들은 물론 천황까지 나서 사과ㆍ반성의 뜻을 밝힌 적도 있다. 고노 담화와 무라야마 담화, 1988년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총리의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 간 나오토 총리의 2010년 '간 담화' 등이 주요 이정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한일관계가 악화일로에 머무르는 것은 아베 총리의 그릇된 역사인식, 우경화 행보 등 '역주행'이 더 큰 원인이라는 지적이 많다. 아베 총리는 취임 후 과거 침략역사에 대해 "침략의 정의는 정해진 것이 아니다" 등 망언 수준의 언사를 서슴지 않았으며, 검증작업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일본군에 의한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담화'를 훼손, 부정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우리 정부가 아베 총리에게 새로운 사과를 하라는 것보다는 기존 고노담화를 비롯해 식민지배와 침략을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 등을 올바르게 계승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히라고 요구하는 쪽이 더 가깝다. 그럼에도 아베 총리는 이를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아베 총리는 일본 사회 내부의 보수화 분위기를 바탕으로 전후체제를 확고히 탈피하겠다는 신념과 정략적 목적이 결합하며 전방위적 우경화 행보를 가속화하고 있다는 점도 한일관계 악화에 한 몫하고 있다.


한 외교전문가는 "냉전시기 안보와 경제협력을 토대로 한일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며 "관계 정상화를 위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낙규 기자 if@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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