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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칼럼] 규제법안, 사전평가제 도입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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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의제 민주주의에서 선거와 의회의 입법권은 핵심적 기능이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선거가 잘 작동하기 위해서는 후보자가 보통 사람들보다 탁월한 능력과 미덕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국가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권력을 쥐여주는 것은 너무나 위험하기 때문이다. 우리 국회의원들은 그 탁월한 능력을 국민을 통제하는 규제입법에 쏟아내고 있는 듯하다. 대통령직속 규제개혁위원회 규제정보포털에 의하면 20대 국회 의원발의 규제법안은 2741건이다. 19대 국회가 1335건이었던 것에 비해 거의 두 배다. 특히 2019년이 불과 1개월 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한 달여 동안 제출된 규제법안은 100여개에 이른다.


무엇보다도 IT업계는 입법실적을 쌓아야 하는 국회의원들의 가장 만만한 '규제 텃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정 영역의 규제는 그 업계의 이익집단과 관련되고, 선거를 의식하는 국회의원은 그러한 이익집단의 목소리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IT의 혁신적 속성은 전통적 영역과 접목, 융합돼 더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특성이 있으나 이는 기존의 이익집단, 즉 기득권과 갈등관계를 야기할 수밖에 없다. 5G의 관리형 서비스, 제로레이팅, OTT, 인터넷방송 등은 모두 전통적 통신ㆍ방송업계의 이해관계와 충돌될 수밖에 없다. 카풀, 배달 애플리케이션, 에어비엔비 역시 택시ㆍ운송업 등 전통적 이익집단과 대립될 수밖에 없다. 여기서 국회의원은 표심을 굳건히 할 수 있는 이익집단과 그렇지 못한 디지털혁신 서비스 제공자 사이에서 어느 편에 서야 하는가를 갈등하게 된다. 당연히 선거를 통한 권력의 연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이러한 상황에서 규제의 칼날은 세력화 혹은 이익집단화되지 못한 디지털 혁신 서비스에 들이댈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산업화는 뒤졌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라는 슬로건하에 혁신적 기술로 이끄는 변혁을 선도해 명실공히 IT 강국으로 맹위(猛威)를 떨친 바 있다. 그러나 그러한 지위는 이미 과거형이다. 구글(유튜브), 페이스북 등 해외 기업에 디지털 경제의 주도권을 빼앗기고 있으며, 글로벌 관점에서 더 이상 새롭다고 할 수도 없는 각종 공유경제ㆍ핀테크(금융+기술) 서비스는 국내에서만 여전히 갈라파고스다. 지금은 4차 산업혁명이라는 기술적ㆍ산업적 변혁의 한가운데 있으며 갈팡질팡할 틈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는 여전히 전 세계적으로 유일무이한 규제법안들을 경쟁적으로 쏟아내고 있다.


규제는 공익, 즉 국익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지 기득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규제가 기득권을 위한 것이라면, 혹자가 지적하듯이 미래 세대를 위한 법률은 없다. 그러나 공익보다는 기득권의 '표(表)'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정치적 어젠다 혹은 일부 이해당사자의 강력한 여론형성에 의해 불합리한 규제가 다수 실행됨으로써 혁신적 서비스가 사장되고 국민의 기본권이 과도하게 제한될 수 있다. 특히 국내에만 존재하는 '고유한' 규제를 설정함으로써 우리 기업에만 과도한 부담을 야기하기도 하고, 내국민 보호를 위한 규제의 집행은 오히려 미흡한 사례도 다수 발생하고 있다. 따라서 무분별한 의원입법 규제에 대한 견제장치로서 규제법안을 사전에 평가하는 제도의 도입이 적극 검토돼야 한다. 규제를 입안하는 단계에서 불합리한 규제가 입법화되는 것을 방지하고, 이미 실행되고 있는 불적절한 규제의 폐지를 독려하는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


좋은 정치는 권력을 통제하지만, 나쁜 정치는 국민을 통제한다고 한다. 기득권에 경도된 규제는 대표적인 국민 통제의 수단이며 나쁜 정치를 초래하게 된다. 국회는 국민을 통제하는 규제가 아니라 국민을 지원하고 북돋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 특히 빈약한 자원과 척박한 내수 규모라는 우리 경제의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IT는 몇 안 되는 국력의 핵심 보루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김현경 서울과학기술대 IT정책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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