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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火요일에 읽는 전쟁사]고려의 흥망성쇠가 녹아든 음식, '떡국'

최종수정 2019.04.11 08:03 기사입력 2019.02.0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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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국 최초 기록, 태조 왕건의 부인이 전쟁터에서 끓인 기록
고려 중기 이후 유행한 '꿩고기 떡국'... 몽골간섭기 들어온 매사냥의 영향
망국의 한이 서린 '조랭이 떡국'... '성계육'과 함께 태조 이성계를 저주한 음식


(사진=아시아경제DB)

(사진=아시아경제DB)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설날 대표 음식이자 한살 더 먹기 위해 먹는다는 명절음식인 '떡국'은 민족사와 함께 해온 음식으로 알려져있지만, 언제부터 먹었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은 음식이다. 조선시대 풍속을 담은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떡국을 아주 오랜 옛날부터 '백탕(白湯')이라 불렀으며, 사내들끼리 나이를 물을 때 "백탕을 몇사발 먹었냐"고 했다는 내용이 있고, 일제강점기 조선사를 연구했던 최남선(崔南善)도 떡국 풍속은 상고시대 제사음식에서 비롯됐다고 기록을 남긴 것을 보아 설날 떡국을 먹는 모습 자체가 매우 오래된 풍습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정작 가장 오래된 역사기록 속의 떡국은 차례상이 아니라 전쟁터에서 차려먹은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역사 속에서 가장 오래된 떡국의 기록은 서기 10세기 초, 태조 왕건이 아직 궁예 밑에서 장수로 있을 당시 전쟁터에서 끓여 먹었다는 내용에서 출발한다. 고려사에 의하면, 전쟁 도중 신년을 맞이하자 왕건의 부인이 진중에 직접 찾아와 떡만두국을 끓였으며, 이에 왕건의 수하들과 병사들이 전쟁터에서 명절 음식을 먹을 수 있어 감격했다고 전한다. 이 기록을 토대로 떡국은 최소 후삼국시대부터 이미 설날 대표 음식으로 자리매김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고려의 시작과 함께 등장한 떡국은 이후 고려의 흥망성쇠와 맥을 함께하게 됐다. 고려 중기인 13세기, 몽골과의 40년에 걸친 항쟁을 끝마친 뒤 몽골 풍습이 대거 고려에 들어오면서 떡국도 큰 변화를 겪게 된다. 고려의 왕자들이 몽골에서 볼모로 자라 성인이 되면 고려로 돌아와 왕이 되는 상황이 100년 가까이 지속되면서 몽골의 매사냥 풍습이 고려에 정착하게 됐고, 이로인해 꿩으로 국물을 잡고 꿩고기로 빚은 떡만두국을 설날에 먹는 풍습이 정착된 것. 역시 친원세력이 다수였던 고려 말기 귀족들도 몽골문화에 익숙해지면서 꿩고기 떡국은 크게 유행하게 됐다.


고려는 13세기 대몽항쟁 이후 몽골의 영향으로 매사냥이 유행하면서 매사냥으로 얻어진 꿩고기로 끓인 떡만두국이 크게 유행하게 됐다.(사진=한국문화재재단)

고려는 13세기 대몽항쟁 이후 몽골의 영향으로 매사냥이 유행하면서 매사냥으로 얻어진 꿩고기로 끓인 떡만두국이 크게 유행하게 됐다.(사진=한국문화재재단)



꿩고기 떡국 유행을 몰고 온 매사냥은 원래 칭기스칸의 후손으로 중국을 정벌한 인물로 유명한 쿠빌라이 칸이 가장 즐겼던 취미로 알려져있다. 고려의 수도 개경과 가까웠던 오늘날 인천 계양산에 대규모 매방이 만들어져 매사냥이 주로 벌어졌으며, 특히 매사냥을 좋아하던 충렬왕의 경우에는 계양산 일대 매방에 자주 찾아와 이 근방 지역의 계양도호부를 길주목(吉州牧)이라 승격시키기도 했다. 매사냥은 이때부터 조선초기까지 크게 유행했으며, 세종대왕의 큰 형인 양녕대군이 호색과 함께 질타받은 품행 중 하나이기도 했다.


그러나 매사냥은 그 당시에도 매우 사치스러운 스포츠였으며, 좋은 매와 훈련사, 사냥 몰이꾼 등 수백명에서 수천명을 고용해 벌이던 것이다 보니 매사냥으로 얻은 꿩고기의 가격도 상당히 비쌌다. 이로인해 민가에서는 값비싼 꿩고기보다는 저렴한 닭고기로 떡국을 끓이는 풍습이 생겨났으며 "꿩대신 닭"이란 속담도 이러한 시대상을 반영해 나온 속담으로 알려져있다. 이러한 꿩고기 떡만두국을 끓이던 사치스런 풍속은 이후 고려가 멸망하고 친원세력이 일소, 사대부의 나라 조선이 등장하면서 적폐로 규정되며 된서리를 맞게 된다.

고려왕조의 멸망 이후 개성 일대에서 유행한 조랭이 떡국은 유래를 두고 이성계를 저주하기 위한 음식이란 설과 고려시대 고액 화폐로 조롱박 모양의 '은병'을 본뜬 것이란 설 등 여러 설이 존재한다.(사진=국립민속박물관)

고려왕조의 멸망 이후 개성 일대에서 유행한 조랭이 떡국은 유래를 두고 이성계를 저주하기 위한 음식이란 설과 고려시대 고액 화폐로 조롱박 모양의 '은병'을 본뜬 것이란 설 등 여러 설이 존재한다.(사진=국립민속박물관)



고려왕조가 끝난 이후에 개성에서는 '조랭이떡국'이란 재미난 모양의 떡국이 유행하게 됐다. 개성 사람들이 고려 멸망 이후 먹게 된 설날 음식으로 대나무 칼로 둥근 떡의 중간부분을 문질러 잘록하게 만들어 조롱박 모양의 떡을 끓여만든 떡국을 뜻하게 됐다. 이 떡국과 돼지고기를 푹 삶아 만든 수육을 칼로 난도질해서 먹었다고 알려져있다. 야사에서 고려 멸망 후 생긴 이 개성의 떡국과 수육을 두고 조선의 태조 이성계를 저주하기 위해 만들어진 음식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조랭이떡국은 위화도 회군을 통해 수많은 개경사람들을 죽인 이성계의 목을 조른다는 의미로 만들었다 전해진다. 조랭이떡국과 함께 먹는 돼지수육은 '성계육', 즉 이성계의 고기라 불리며 돼지띠에 태어난 이성계에게 복수한다는 의미로 칼로 난도질해 먹었다고 알려져있다. 실제 이성계는 위화도 회군 당시 요동원정군 5만명을 이끌고 개경으로 회군, 성 전체를 포위하고 전투를 벌였으며 최영장군이 이끌고 있던 8000여 수비병력과 교전하면서 개경 내에서 시가전을 벌여 많은 개경사람들이 희생된 것으로 알려져있다. 왕건의 부인이 끓였다는 떡국부터 몽골에서 건너온 꿩고기 떡국, 망국의 한이 서린 조랭이 떡국까지 떡국 한 그릇에 고려왕조란 나라의 흥망성쇠가 모두 들어가 있는 셈이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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