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 블랙리스트 'V' 표시
이규진 수첩에 적힌 '大'자
김앤장 독대문건 주요증거
사법농단 기획·주도 암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서울구치소에서 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는 23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 앞에서 사법농단피해자연대 회원들이 '양승태 구속 촉구' 촛불문화제를 갖고 있다./윤동주 기자 doso7@
[아시아경제 박나영 기자]"너무도 분명한 증거 앞에서 모른다고 딱 잡아떼는 것을 보면서 영장발부를 결심한 게 아닐까."
◆지울 수 없는 'V', '大'=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 필요성을 주장하며 검찰이 내세운 결정적 증거는 '사법부 블랙리스트'에 체크된 'v'자, '이규진 수첩'에 적인 '大'자, 그리고 양승태와 김앤장의 '독대 문건'이다. 이 증거들을 통해 그가 단순히 지시하고 보고받는 수준을 넘어 '사법농단' 의혹과 관련된 일을 직접 주도했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은 사법농단 수사의 시발점이 됐다. '법원행정처가 특정 학술단체 소속 법관들을 사찰했다'는 내부 문제제기는 검찰수사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이 어떤 판사에게 불이익을 줄 지 직접 v자 체크를 한 문건을 확보했다. 또 양 전 대법원장이 사법행정에 반대하는 법관들을 사찰하거나 좌천시키는 등 부당한 인사 조치를 검토ㆍ지시했다는 진술도 다수 확보했다.
김앤장 독대 문건은 양 전 대법원장이 일제 강제징용 소송 과정에 직접 개입한 중요 증거가 됐다. 검찰은 박근혜 정부가 이 재판과 관련해 문제제기를 하자 양 전 대법원장이 전범 기업의 소송을 대리했던 김앤장 관계자들을 직접 만나 논의하는 등 재판에 개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
양 전 대법원장이 이규진 업무수첩의 大가 사후에 조작됐을 가능성이 있고 후배 법관들의 진술은'거짓말'이라며 혐의를 전면 부인한 것은 오히려 '증거인멸의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근거가 된 것으로 보인다.
◆단순 지시 아닌 주도자=구속영장 발부 사유에 '피의자의 지위 및 중요 관련자들과의 관계 등에 비춰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한 것은 사법농단 의혹에서 양 전 대법원장이 핵심 주도자라는 검찰의 주장을 법원이 받아들인 것으로 볼 수 있다.
법원은 앞서 박병대ㆍ고영한 전 대법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하며 "공모관계 성립에 의문의 여지가 있다"고 했다. 이에 검찰은 보강수사에서 양 전 대법원장이 각종 혐의에 직접 개입한 물증과 진술을 확보하는 데 집중했다.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도 "핵심 범죄혐의들에서 단순히 지시하고 보고받는 수준을 넘어 직접 주도한 사실이 진술과 증거에서 확인돼 구속영장 청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혔다.
'주요 범죄 혐의에 대한 소명이 충분하다고 보기 어렵다'며 박 전 대법관에 대한 두 번째 영장청구를 기각한 것도 양 전 대법원장이 사법행정권 남용을 주도한 것으로 보는 법원의 시각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임종헌(구속)-박병대-양승태'로 이어진 지시ㆍ보고라인에서 중간고리인 박 전 대법관을 제외하고도 양 전 대법원장의 혐의가 상당 부분 소명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한편 김명수 대법원장은 이날 출근길에 "(양 전 대법원장 구속으로) 국민들이 공정하게 재판받을 권리가 침해됐다는 게 입증됐는데, 심경이 어떠냐"는 기자의 질문에 "국민께 송구하다는 말씀 드린다. 참으로 참담하고 부끄럽다"고 사과했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 검사장은 사법부 수장의 구속에 대해 "수사팀 책임자로서 지금의 상황에 대해서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 고 말했다.
박나영 기자 bohena@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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