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알려진 바와 달리, 인도 철학과 중국 철학에는 언어의 논리(文理)로 파악되지 않는 사물의 이치(事理)가 존재한다는 주장과 언어로 세계를 분명하게 정의할 수 있다는 주장 사이의 오랜 논쟁이 있다. 중국 문학에서는 일찍이 "말이 뜻을 다 표현할 수 있느냐 없느냐(言盡意 言不盡意)" 논쟁이 있었으며, 불교에서도 "진여를 말로 표시할 수 있느냐 없느냐(依言眞如 離言眞如)"에 대한 논의가 치열하게 다뤄졌다.
한 사회의 지도자는 목소리를 갖지 못하는 사람들을 대신해 그 목소리를 전달할 의무를 지닌다. 서로 다른 견해와 이해를 중재하고 조정하는 것 역시 그들의 몫이다. 그들에게 주어진 수단은 다름 아닌 언어다. 폭력이 아닌 평화적인 수단으로서의 언어다.
그러므로 한 사회에서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언어를 정확히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다. 말의 논리를 통해 옳고 그름을 가리고 진실과 거짓을 가릴 줄 알아야 한다. 동양의 현자들이 염려했듯이 말은 말로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자기 말이 말의 이치에는 맞을지라도 사물의 이치에 맞지 않을 때 겸허히 수용하는 정도의 식견을 갖춰야 한다.
한 사회의 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첨단 기술이나 물질적 풍요가 아니다. 분석심리학자 카를 융이 올바르게 지적했듯이 "0을 아무리 많이 더해도 절대로 하나의 단위를 만들 수 없는 것과 똑같이, 어떤 공동체의 가치는 그것을 구성하는 개인들의 정신적 및 도덕적 수준에 좌우된다." 동양의 현자들이 구사했던 역설과 반어의 세계, 그 유머와 기지 그리고 반전의 신선함을 기대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일까? 사물의 이치에 대한 통찰과 미래에 대한 비전까지 기대하지는 않겠다. 언어의 논리라도 정확히 구사하는 지도자가 많아진다면 우리 사회는 한결 좋은 사회가 되지 않을까?
명법스님 구미 화엄탑사 주지
꼭 봐야할 주요뉴스
"살 빼려고 맞았는데 아이가 생겼어요"…난리난 '... 마스크영역<ⓒ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