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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어떤 말을 사용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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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과 반어는 그 의미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그 말이 표상하는 자유로움 때문에 신선한 충격을 준다. 불교와 노장 사상을 비롯한 동양 철학의 매력이 어쩌면 이런 언어 사용에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현대사회에서 이 특수한 언어 사용은 메이지 시대 일본의 '근대의 초극' 논리가 그랬던 것처럼 '직관'이니 '초월'이니 하는 미사여구를 들이대며 근대 서양의 이성과 합리성이 초래한 인류 문명의 위기를 타개할 유일한 대안이라고 주장하거나, 말도 안 되는 '뜬구름 잡는 소리'나 해대는 낡고 맹랑한 것이라는 인상을 덧씌워준 것으로 그쳤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와 달리, 인도 철학과 중국 철학에는 언어의 논리(文理)로 파악되지 않는 사물의 이치(事理)가 존재한다는 주장과 언어로 세계를 분명하게 정의할 수 있다는 주장 사이의 오랜 논쟁이 있다. 중국 문학에서는 일찍이 "말이 뜻을 다 표현할 수 있느냐 없느냐(言盡意 言不盡意)" 논쟁이 있었으며, 불교에서도 "진여를 말로 표시할 수 있느냐 없느냐(依言眞如 離言眞如)"에 대한 논의가 치열하게 다뤄졌다.
동양 문화가 보여준 언어에 대한 조심스러움은 언어의 이치와 사물의 이치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자각에 말미암은 것으로, 반어와 역설은 황당무계하며 뜬구름 잡는 공허한 소리가 아니라 그 조심스러움과 지혜를 보여주는 탁월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로부터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우리가 힘써 알아야 할 것이 언어의 정합성이 아니라 언어의 한계라는 교훈이다. 언어에 대한 과신을 조심해야 한다는 점 역시 동양 문화에서 얻을 수 있는 값진 교훈이다.

한 사회의 지도자는 목소리를 갖지 못하는 사람들을 대신해 그 목소리를 전달할 의무를 지닌다. 서로 다른 견해와 이해를 중재하고 조정하는 것 역시 그들의 몫이다. 그들에게 주어진 수단은 다름 아닌 언어다. 폭력이 아닌 평화적인 수단으로서의 언어다.

그러므로 한 사회에서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언어를 정확히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다. 말의 논리를 통해 옳고 그름을 가리고 진실과 거짓을 가릴 줄 알아야 한다. 동양의 현자들이 염려했듯이 말은 말로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자기 말이 말의 이치에는 맞을지라도 사물의 이치에 맞지 않을 때 겸허히 수용하는 정도의 식견을 갖춰야 한다.
팟캐스트에 이어 유튜브 방송까지 인터넷 매체에 대한 정치인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소통의 매체가 더 많아졌다고 하여 진짜 소통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내 말만 하는 방송이라면 굳이 필요가 있을까? 막말과 가짜 뉴스가 확산되고, 사실이든 아니든 지지자들의 관심과 동조를 얻으면 그만이라는 방송이 더 필요할까?

한 사회의 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첨단 기술이나 물질적 풍요가 아니다. 분석심리학자 카를 융이 올바르게 지적했듯이 "0을 아무리 많이 더해도 절대로 하나의 단위를 만들 수 없는 것과 똑같이, 어떤 공동체의 가치는 그것을 구성하는 개인들의 정신적 및 도덕적 수준에 좌우된다." 동양의 현자들이 구사했던 역설과 반어의 세계, 그 유머와 기지 그리고 반전의 신선함을 기대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일까? 사물의 이치에 대한 통찰과 미래에 대한 비전까지 기대하지는 않겠다. 언어의 논리라도 정확히 구사하는 지도자가 많아진다면 우리 사회는 한결 좋은 사회가 되지 않을까?

명법스님 구미 화엄탑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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