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하우스 '팔레 가르니에(Palais Garnier)'는 파리 시내에서는 제일 화려한 건축입니다. 19세기에 지어졌지만 지금 이보다 잘 짓기는 쉽지 않죠. 설계의 정교함과 내부 장식의 화려함을 글로 표현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백 마디 말이 한 번 보는 것만 못 합니다. 오르세 미술관에 가면 이 건물의 작은 모형이 정교하게 제작돼 전시되고 있죠. 그 공학적 세밀함과 수학적 정교함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실제 현장을 방문하면 세세한 정밀함에 대한 감탄은 날아가고, 아름다운 공간과 주고받는 감동이 파도처럼 일어납니다.
팔레 가르니에는 '가르니에 궁전'이란 뜻입니다. 나폴레옹 3세의 사랑을 받은 건축가 샤를 가르니에(Charles Garnierㆍ1825~1898)가 지은 오페라하우스의 다른 이름이죠. 궁전에 버금가는 공연장. 화려한 문화 수준을 뽐내는 자긍심이 반영됐지만, 건축가의 이름이 건물의 이름이 된 희귀한 경우이기도 합니다. 건축가를 얼마나 존중했으면 그의 이름을 기려 건축물에 붙였을까요. 우리나라는 건축을 공과대학에 편재시킬 뿐만 아니라 예술로 인정하는 분위기가 아닙니다. 속된 말로 건축은 '공돌이가 짓는 집'일 뿐이죠. 건축을 예술작품으로 바라보는 문화가 부족하니까 공공건축 준공식 날의 주인공은 건축가가 아니라 시장이나 시의장이 되기 일쑤입니다. 건축가를 초대하기는 하지만 소개하지 않는 경우도 많죠.
괴테는 건축을 '얼어붙은 음악'이라고 했습니다. 원래 건축은 공간의 예술이어서 대표적인 시간의 예술인 음악과는 관계가 멀지요. 그런데 괴테는 건축의 살아 있음을 그 시간성 속에서 발견하려는 겁니다. 시시각각 음악적 느낌이 나는 건축. 다만 시간이 얼어붙어 있을 뿐인 그 성격을 주목하는 거죠. 한국의 원로 건축가 김원은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 기둥 체험을 이렇게 말합니다. "젊은 날, 파르테논 기둥에 어깨를 파묻고 앉아 있었습니다. 아침의 기둥은 온통 황금빛으로 이글거립니다. 점심엔 새파란 창공을 배경으로 백색의 대리석이 눈부실 정도로 빛나죠. 노을 무렵엔 붉은 빛으로 타오릅니다. 달밤에는 푸른색이 흘러내리죠. 시시각각 달라지는 모습에 넋이 빠져 거기서 꼬박 사흘을 보냈습니다. 지금은 출입금지를 시켜 아쉽지만, 아름답고 다양한 모습을 바라볼 수는 있죠."
회화나 조각이나 건축은 공간예술이죠. 이들은 공간을 벗어나서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살아 움직이지 않습니다. 시간에 따라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괴테가 '얼어붙은'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하지만 괴테는 음악을 지향하는 건축을 바랍니다. 시간을, 음악을 바라볼 수 있는 건축을 뜻하는 게 아닐까요? 김원의 파르테논 기둥 체험은 흐르는 음악을 바라보는 독특한 건축 체험인 거죠. '그토록 아름답고 다양한 모습'이 바로 시간예술의 속성인 음악성입니다. 저는 파르테논 신전 기둥의 음악성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팔레 가르니에는 얼어붙은 음악을 풀어내는 건축입니다. 오페라하우스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건축을 구성하는 침묵의 돌들은 그 색깔과 모양과 재질과 공간 속에서 스스로 노래합니다. 최상의 조각들과 빼어난 명화들도 이야기를 소곤거리지요. 이들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시간을 살아가는 생명의 주인공들입니다. 객석은 물론 계단과 복도와 발코니들이 하나같이 살아 있는 뮤즈입니다. 돌아보는 시간 내내 음악과 시의 신들이 귓전에 와서 속삭입니다. 집은 살아 있다. 아름다운 집은 살아 있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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