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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 잡으면 결혼하자”…4년째 맴도는 그 말

최종수정 2019.01.02 14:03 기사입력 2019.01.02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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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리포트-폭풍눈물 2534]
"4년째 연애중"…30대 이호현·김소정씨 커플
직장 있어도 신혼집·결혼식 비용 엄두 못내
부모 도움 없는 결혼은 손꼽을 정도

이호현·김소정씨 커플이 지난달 30일 텅 빈 예식장 주례석을 바라보고 있다. 둘은 지난해 하려던 결혼을 경제적 사정으로 두 차례나 미뤄야 했다.

이호현·김소정씨 커플이 지난달 30일 텅 빈 예식장 주례석을 바라보고 있다. 둘은 지난해 하려던 결혼을 경제적 사정으로 두 차례나 미뤄야 했다.


[아시아경제 송승윤 기자] 이호현(30ㆍ가명)씨와 김소정(30ㆍ가명)씨 커플은 주례도, 하객도 없는 텅 빈 예식장 버진로드에 단 둘이 섰다. 기껏해야 20m 남짓한 그 길을 통과해 부부가 되는 게 그렇게 어려울 줄 꿈에도 몰랐다. 잠시나마 가슴 벅찬 감정을 느껴도 봤지만 동시에 덜컥 두려움이 밀려들었다. "언젠가 우리도 이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올해 통계청이 발표한 '2018년 사회 조사' 결과에 따르면 '결혼을 해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국민의 비율은 48.1%로 2년 전인 51.9%보다 3.8%포인트 줄었다. 20년 전인 1998년에는 이 비율이 무려 73.5%였다. 이 통계가 말하는 것은 무엇일까.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청년들이 매우 많아졌다는 뜻일까.

그보다는 "결혼을 반드시 또는 되도록 하지 말아야 한다"며 적극적으로 결혼에 반대하는 사람의 비율이 현실을 더 잘 알려준다. 이렇게 응답한 사람은 3.0%에 불과했다. 결혼이 필수라는 인식이 흐려진 것도 맞지만, 이씨와 김씨 커플처럼 "상황만 된다면 하고 싶다, 그러나 할 수 없다"는 청년이 상당수임을 방증한다.
이호현·김소정씨 커플이 텅 빈 예식장 버진로드에 올라서있다.

이호현·김소정씨 커플이 텅 빈 예식장 버진로드에 올라서있다.


이씨는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에서 기간제 국어 교사로 일한다. 의류 회사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는 김씨와 4년째 연애 중이지만 아직 결혼 계획은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결혼을 계속 미루고 있다. 재작년부터 시작된 결혼 준비는 출발부터 삐거덕거렸다. 우선 가진 돈으로 살 만한 집을 구하는 것부터 어려웠다.

이씨는 "여자친구 직장이 서울 동대문구에 있고 나도 올해부터 서울로 출근할 예정이라 서울 외곽 중심으로 집을 알아봤다"면서 "그러나 둘이 겨우 살 만한 다세대 주택도 전세 가격이 2억원을 훌쩍 뛰어넘는 걸 확인하고는, 조금 더 여유가 생기면 다시 결혼 준비를 하기로 계획을 미뤘다"고 회고했다.

양쪽 모두 집안 사정이 여의치 않아 부모에게 손을 벌릴 수도 없다. 직장 생활 3년 만에 둘이 모은 돈은 3000만원이 조금 넘는다. 집은 대출을 최대한 받아 해결하더라도 신혼여행이나 혼수 등 결혼식에 들어가는 비용을 모두 따져보면 도저히 답이 안 나왔다. 이들이 지난달 30일 한 예식장을 찾은 것도 결혼식 비용을 대충이라도 알아보려는 취지였다.
웨딩 업체 상담을 받는 이호현·김소정씨 커플.

웨딩 업체 상담을 받는 이호현·김소정씨 커플.


"더 행복해지고 싶어 하는 결혼인데 여유 없는 둘이 만나 더 여유가 없어지는 상황을 만들긴 싫다."(이씨) "사랑하는 마음만 가지고 불확실한 미래를 헤쳐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김씨)
이씨와 김씨는 자신들의 처지가 지금 이 사회에서 매우 특이한 경우가 아니라는 말도 여러 번 했다. 이씨는 "주변에서 부모의 도움을 받지 않고 결혼하는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라면서 "우리처럼 도움을 받을 곳이 없는 경우라면 조금 더 안정될 때까지 결혼을 미루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이어 "주변 친구 중에는 오랜 기간 잘 사귀다가 결혼 시기가 다가오면서 현실을 깨닫고 아예 헤어지는 커플도 많이 봤다"고 씁쓸히 웃어보였다.

그들은 예식장을 돌아다니는 내내 '웨딩 플래너'가 내미는 계약서에 금방이라도 사인을 할 것처럼 행복한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예식장을 나와 복잡한 거리에 선 두 사람의 얼굴에는 금세 근심이 드리워졌다. "결혼식은 어떻게 가능할 것 같은데…. 근데 집은 어떡하지?"(이씨) "좀 더 자리 잡으면 다시 와보자."(김씨)

송승윤 기자 kaav@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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