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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오늘]클라라 하스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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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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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1월 28일 잘츠부르크에 있는 '그로서 잘 모차르테움'에서 모차르트의 교향곡과 피아노협주곡이 연주되었다. 지휘자는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잘자흐 강가에서 태어난 잘츠부르크 토박이였다. 이날은 모차르트의 생일 하루 뒤였고, 연주회는 작곡가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는 제1회 잘츠부르크 모차르트 주간에 열렸다.

타티아나 니콜라예바가 이 연주회에 참석한 것 같다. 미국 루이빌에서 태어난 작곡가 조너선 울프는 니콜라예바가 카라얀을 보러 잘츠부르크에 갔다는 기록을 언급하며 바로 이날 연주를 들었으리라고 확신한다. '러시아 피아니스트들의 대모' 니콜라예바는 등이 굽은 루마니아 출신의 여성 피아니스트가 연주하는 모차르트를 듣고 놀란다. 노태헌이 2012년에 낸 <20세기의 위대한 피아니스트>에 이 일화를 적었다.
"구부정한 자세에 희끗희끗한 백발은 흡사 마녀 같았고, 마치 무언가에 홀려 있는 사람 같았다. 오케스트라의 서주는 훌륭하게 시작됐지만 그녀는 오케스트라 소리에 별로 집중하지 않는 듯했다. 하지만 그녀가 두 손을 건반 위에 올려놓는 순간, 카라얀의 존재는 내 머리에서 사라져 버렸다. 내 얼굴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최고의 모차르트 연주자를 발견한 것이다."(니콜라예바·22쪽)

루마니아에서는 종종 뛰어난 클래식 음악가가 나온다. 바이올린 연주자 겸 작곡가 제오르제 에네스쿠(1881~1955), 지휘자 세르주 첼리비다케(1912~1996), 피아노 연주자 디누 리파티(1917~1950). 하지만 1895년 1월 7일 부쿠레슈티에서 태어나 1960년 오늘 새벽에 벨기에의 브뤼셀에서 눈을 감은 '피아노의 성녀(聖女)' 클라라 하스킬은 모든 이의 명성을 뛰어넘을 만큼 특별한 존재였다.

클라라는 악보도 볼 줄 모르던 여섯 살 때 모차르트 소나타의 한 악장을 한 번 듣고 그대로 따라 쳤다는 천재다. 그뿐인가. 그 악장 전체를 조바꿈해 쳤다고 한다. 열 살이 되어서는 모차르트의 피아노협주곡 23번을 연주했다. 열한 살에 파리 음악원에 들어가 알프레드 코르토를 사사하고 열다섯 살에 피아노와 바이올린 모두 수석으로 졸업했다. 이 시절의 사진은 신비로울 정도로 아름다운 클라라의 젊음을 보여준다.
1913년, 클라라는 세포경화증 판정을 받았다. 뼈와 근육이 굳고 뒤틀리는 병이었다. 그녀는 4년이나 보조기구를 달고 살아야 했다. 피아노는 칠 수 없었다. 고통은 그녀에게서 젊음을 빼앗아갔다. 20대의 클라라는 머리가 세고 등이 굽어 노인처럼 변했다. 그 사이 어머니가 죽었고 1차 대전이 터졌다.

클라라는 유대인이었다. 2차 대전 때는 나치의 박해를 피해 마르세유로 피신했다. 이 와중에 뇌졸중과 뇌종양이 덮쳤다. 뇌종양이 시신경을 눌러 실명할 가능성이 컸다. 목숨이 위태로웠고, 대수술을 피할 수 없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수술은 성공이었다. 가까스로 몸을 추스른 그녀는 1947년 연주를 재개한다. 몸은 뒤틀렸으나 정신은 건강했다. 고통도 인격을 허물지는 못했다. 겸손하고 다정한 그녀는 누구나 함께 연주하고 싶어 하는 협연자였다.

클라라는 1960년 12월 6일 바이올리니스트 아르투르 그뤼미오와 협연하러 브뤼셀에 갔다가 지하철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머리를 다쳤다. 이번엔 치명적이었다. 병원에서 잠시 정신이 든 그녀는 동생에게 말했다. "내일 공연은 힘들 것 같구나. 그뤼미오에게 내가 얼마나 미안해 하는지 모른다고 전해 다오." 클라라는 예순여섯 번째 생일을 한 달 앞두고 숨을 거두었다.

생전에 클라라를 만나본 찰리 채플린은 말했다. "나는 진정 천재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을 세 명 만났다. 한 사람은 아인슈타인이었으며 또 한 사람은 처칠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한 사람, 누구보다도 현격히 차이 나는 두뇌의 소유자는 클라라 하스킬이었다." 클라라의 무덤은 파리 몽파르나스에 있다. 그녀를 기리는 클라라 하스킬 국제 피아노 콩쿠르가 1963년부터 2년에 한 번 스위스 베베이에서 열린다.

우리로서는 다행히도 클라라의 중요한 연주를 모두 들어볼 수 있다. 잘츠부르크의 그로서 잘 모차르테움에서 카라얀이 지휘하는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모차르트의 협주곡 20번, 1947년 카를로 제키가 지휘하는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베토벤의 협주곡 4번, 그리고 겸손한 클라라 하스킬이 '들어줄 만하다'고 했다는 그뤼미오와의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까지. huh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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